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Monica, 331년-387년) 자녀들이 기억하길 원한 신앙의 유산에 대한 마지막 유언 “단 한 가지만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그림-피에로 프란체스카, <성 모니카>, 1460년경)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는 평소 고향에 묻힌 남편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옆에 묻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묘 옆에 자신이 묻힐 자리를 마련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외지에서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다 잠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자신이 있는 이곳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그 말에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형 네비기우스가 의아해하자, 모니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몸은 어디에 묻어도 좋다. 그 일로 인하여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단 한 가지만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어거스틴(Augustine), St. Augustine’s Confessions Ⅰ.Ⅱ., 성한용 역,『성 어거스틴의 고백록』(대한기독교서회, 1990년), 296쪽.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긴 한 마디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의 『고백록』(Confessions) 제9권 11장에서부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Monica, 333년-387년)의 죽음과 장례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애도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모니카가 이탈리아 오스티아(Ostia)에 있을 때, 어느 날 열병으로 앓던 중 실신했다가 어렵게 의식을 회복합니다. 이런 일이 있고 모니카는 병상에 누운 지 90일째 되는 56세 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 때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나이는 33세였습니다. (그림-아리 쉐퍼, <성 아우그스티누스와 모니카>, 1846년) 모니카는 화려한 베로 자신의 시신을 감싸거나 향유를 발라주기를 또 아름다운 비석을 세우거나 꼭 고향에 묻어주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관심은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단, 모든 죄가 용서함 받고 깨끗케 되는 그곳에서 기억되기를 원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 되는 그곳에서 말입니다.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그녀에게 그런 자유로운 마음을 주었고 혹시 타향에서 죽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서 평안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먼 곳이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세상 끝 날에 나를 부활시킬 장소가 어디인 줄 모를까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어거스틴(Augustine), St. Augustine’s Confessions Ⅰ.Ⅱ., 성한용 역,『성 어거스틴의 고백록』(대한기독교서회, 1990년), 297쪽.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 자녀에게 남기는 신앙의 유산(그림-Vergós Group, <성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모니카>, 1470/1475년-148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의 깊은 슬픔에 괴로웠습니다. 병석에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효자라고 해주신 말씀, 자신에게 심한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칭찬해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은 더욱 슬펐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음의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러는 중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슬픔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눈을 감겨드릴 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마음에 북받쳐 올라와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럼에도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붙들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모니카는 밤이면 밤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루는 꿈을 꿉니다. 모니카가 나무로 만든 자(水準尺)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때 한 키가 큰 청년이 수심에 잠겨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서 미소를 지으며 왜 슬퍼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니카는 아들이 저렇게 타락의 길을 가고 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그 청년이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는데, 유심히 보니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머니 모니카 곁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들이 어머니의 기도로 다시 어머니께로 돌아온다는 뜻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모니카는 암브로시우스(Ambrosius) 감독에게 가서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 돌아오도록 지도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 때 그는 “잘 될 터이니 그만 돌아가시오. 그처럼 눈물의 자식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고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그림-베노초 고촐리, <성 모니카의 죽음>, 1464년-1465년) 아우구스티누스는 평생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로 살기를 구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온전한 회심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불필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그리고 어머니를 땅에 묻을 때 어머니의 그 간절한 기도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되어 그가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길을 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는 아우구스티누스로 주님의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주님의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 가운데 구원에 이르고 온전한 안식 가운데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 한 마디야말로 자녀를 위한 가장 소중한 마지막 당부이며 가장 값진 신앙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나의 삶의 마지막 말이라면’, 나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의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그리고 자녀들이 나를 기억할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길 원하십니까? 평소 일상의 삶에서 신앙과 천국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에게 남길 신앙의 유산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를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신앙의 모습을 자녀의 기억 속에 남기는 것, 이것이 유한한 생을 사는 우리가 자녀에게 남길 가장 큰 유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