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8] 어리석은 부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가복음 12:20 - 인생에서 많은 지식은 책이나 경험을 통해 얻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분별력과 지혜는 그런 것으로부터가 아닌 결정적으로 죽음을 인식함으로 얻게 됩니다. 인생은 언젠가 죽고 이 세상을 떠나갈 존재이며, 그날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현대인은 소유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소유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행복을 결정한다고 믿으며 부지중에 끌려갑니다. 그러나 소유가 존재가치를 높이거나, 행복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속고 살아가는데, 이러한 잘못된 인생관은 죽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결국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소유의 허무함과 그 유한함을 알게 됩니다. (그림-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선술집의 탕자>The Prodigal Son in the Tavern, 1635년경) 무디 목사는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스스로 썼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날, 무디가 죽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말을 하나도 믿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욱 더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나폴레옹은 젊은 날 사형 선고를 받게 되어 죽기 전, 살았을 때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이런 말을 남기고 절망 중에 죽었습니다. “나는 내 때가 되기 전에 죽는다. 이제 내 몸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계의 명장이라고 불리던 나 나폴레옹의 운명도 이런 것이었구나. 나의 깊은 비참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간격이 있구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예수님께서 누구나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주신 비유의 말씀 중에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이 비유로 천국진리와 고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주제를 던져주십니다.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바로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육체가 아닌 영혼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주시는 말씀을 깨닫습니다. 영혼의 중요성을 모르면 허탄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은 거대한 땅을 가진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소유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소유 중심의 인생을 살았음을 아셨습니다. 부정부패를 했다거나, 범죄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소유에 이끌려서 헛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소유에 근거하여 자기 존재가치를 크게 여기고, 미래의 안정과 행복을 자신했습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의 소유관 속에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영혼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육체뿐이었습니다. (그림-퀜틴 마시스Quentin Matsys, <대금업자와 아내> The Moneylender and his Wife, 1514년) 하나님께서 이 부자를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미련하다는 것만 아니라, 멸망할 악인임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판단으로는 악인이며 멸망할 자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 시편 14:1 - 무엇보다 이 사람이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중심에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안계시니 다른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주인이 됩니다. 모든 것이 나 중심의 삶이고, 자신의 유익을 좇으며 자기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끝입니다. 또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한자라고 부르십니다. 소유에 대한 탐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탐심이 많다고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범죄와 연결되지 않는 한, 비난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탐심은 무서운 죄입니다. 그리스도인만이 아는 회개할 죄악입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누가복음 12:18-19 - 인간이 원하고 자랑하는 소유는 영혼을 빛나게 하거나 날마다 새롭게 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많으면 많을수록 영혼이 죽어갑니다. 영혼이 빛과 같이 충만해서 모든 소유를 감당할 수 있을 때에는 재물이 복일 수 있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화가 됩니다. 영혼은 우리의 지정의를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재물에 의해 영혼이 죽으면 지정의가 날마다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부뤼겐Hendrick ter Brugghen,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The parable of the rich man and poor Lazarus, 1625년) 영혼의 안식으로서의 죽음그리고 영혼의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 육체는 죽어서 슬프지만 사실 영혼은 날개를 답니다. 육체가 썩어 죽었을 때 비로소 영혼이 자유로워집니다. 그 영혼이 안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간절히 하신 말씀도 하나님께 영혼을 부탁한다는 기도였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 누가복음 23:46 - 육신은 죽어 썩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이 소중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인생이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께 가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비록 세상에서 소중히 여겼던 육신은 죽어 없어지지만, 영혼이 영원한 생명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할 때,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부활합니다. 그 전에 우리의 영혼은 안식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인식함으로 영혼의 중요성을 명백히 알게 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내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깨닫습니다. 내 소유라는 것은 수많은 창조물 중의 조그만 결실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없었다면 그 소유는 없는 것이기에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21 - 이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중생의 삶이 나타납니다. 말뿐 아니라, 삶 속에서 중요한 소유관이 뒤바뀝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천국 백성이 됐다는 것은 소유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생명, 내 소유, 내 재물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바뀝니다. 육신을 갖고 있는 이 시간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게 맡겨진 삶임을 고백하며 기뻐하면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천국 진리를 통해서 이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지를 말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회개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고 날마다 소생하게 됩니다. 그 영혼은 오직 주의 복음, 주의 말씀을 먹음으로 믿음 안에서 새로워집니다. 내 영혼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하나 됩니다. 이전에는 이런 저런 것이 다 중요했지만, 이제는 점점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구주되시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건으로, 체험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신 것을 경험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세상중심, 자기중심, 소유 중심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죽음 후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중심, 복음중심, 천국중심, 영혼중심의 삶을 삽니다. 내 삶이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삶을 확증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위대한 인생을 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한 일이라면(롬 14:8), 우리의 삶과 죽음의 시기에 대해서는 주께 맡겨 버리도록 하자. 그러면서 동시에 죽음을 향하여 강한 열정을 가지며 그것을 계속해서 묵상하며, 또한 미래에 올 영원한 삶과 비교하면서 죄로 얽어매는 이 땅의 삶을 멸시하며, 언제 주께서 부르시든지 간에 기꺼이 이 삶을 마감하기를 사모하도록 하자.” - 존 칼빈(John Calvin),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1. 예수님께서 부자를 향해 어리석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물질과 소유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바른 태도에 대해 생각해봅시다.2.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전지전능하신 은혜의 하나님. 주의 복음을 믿으므로 영적 눈을 뜨게 하시고 마음을 밝히셔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영혼 중심의 삶을 살아 복음의 증인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지켜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도서 추천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 :저자의 대표 저서로 1965년 가을, 시카고 신학대학원생 네 명이 ‘인간 삶의 위기’라는 논문 쓰는 것을 도우면서 임종을 앞둔 이들의 인터뷰를 시작해 이후 2년여에 걸쳐 만난 시한부 환자 500여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책의 부제,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 간호사, 성직자 그리고 가족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이 인상적입니다. 죽어감의 태도 5단계인 ‘부정과 고립’,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을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