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12] 예수께서 받은 영광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 요한복음 13:31 - 하나님의 부르심은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계속됩니다. 성경에서 야곱이나 모세를 비롯해 여러 인물이 출생 이전에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또한 많은 선지자와 사도가 인생의 과정 중에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은 죽음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이해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죽음도 우연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모를 뿐,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이 아시는 계획 속에 이루어진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 초기에 참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다. 하늘이 부른다.” 그래서 ‘소천’(召天)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죽음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생이 가장 고귀한 시간이고 기쁜 날이라면 죽음도 하나님이 부르신 시간이기에 귀한 시간입니다. 의미 있는 시간이며 또한 기쁜 날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빛나는 시간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빛나는 시간은 죽음입니다. 이 순간 세상일에 대한 걱정은 다 사라집니다. 이제 세상의 불경건과 폭력과 불의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것은 내 몫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 관계만 생각해야 하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리고 ‘아멘’하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영광이고 나의 승리다.” (그림-카라바조Caravaggio, <가시면류관>Dornenkrönung Christi, 1602-1604년)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는 아주 특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줄 이미 아시고 행하신 사건, 말씀과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 날이면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준비하십니다.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헛된 꿈에 잡힌 그들에게 강한 교훈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느니라.”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 - 그리고 잘 알려졌듯이 성만찬(The Lord supper, The last supper)을 행하십니다. 주님의 최후의 만찬은 죽음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귀한 시간으로 준비하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사건 자체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형벌로 수치와 고통입니다. 가장 비참한 시간입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 처형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만 시행하던 수치스러운 형벌입니다.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벌거벗겨 놓고 죽을 때까지 매달아놓습니다. 그래서 참수형에 처하는 것이 오히려 평안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처형을 아시고도 그 죽음을 가장 고귀한 시간으로 준비하며 결단하십니다. (그림-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8년) 그런데 제자들은 이 죽음을 모릅니다. 오히려 헛된 꿈을 꾸다가 다 도망갈 상황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이 민족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악한 일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 암시를 주셨는데도 사탄에 붙들려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심판받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하지 않음으로 심판에 이르고, 믿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 안에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순간입니다. 외적으로는 사탄과 어두움, 세상과 박해자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지금 승리했고 그리고 영광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영광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으로, 승리로 받아들이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Now is the Son of Man has been glorified)”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요 13:31). 십자가의 길과 복음의 역사예수님은 지금 죽음 너머를 보셨습니다. 죽음 이후에 부활하실 것을 아셨기에 나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소망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의미 있는 새로운 시간으로 받아들이며 찬송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국의 영화를 보셨습니다. 그래서 영광된 승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길 없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못 들어갑니다. 오직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약속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미래적 사건을 보셨습니다. 이로 인해 구원의 역사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는 진노의 자녀들에게,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승리요, 영광이다.” 십자가의 피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받는 역사도 없습니다. 의롭게 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십자가의 죽음을 귀히 보시고 예수님으로 구주되게 하셨습니다. 유일한 구세주로 삼으시고 만왕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영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진리이고,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림-베로나 사람Veronese, <승천>The Ascension, 1585년) 세상은 죽음을 끝(The end)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허무이고 두려움이며 절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죽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어떻게든 죽음을 피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특별히 사건이나 질병으로 닥쳐오는 죽음은 더욱더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차원이 다른 삶을 삽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과 해석 그리고 준비가 다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인생을 통해서 기도하고 소망하던 그 순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영화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므로 더 이상 허무도, 절망도, 두려움도, 슬픔도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육에 있어서 가장 문제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죽음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터부시하고 멀리 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에 이끌려 현재를 살게 됩니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죽음에 대한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실시하며 계속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기독교 인구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혼부부에게 미리 죽을 장소를 정해주면서 봉안함을 선물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라는 뜻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알고 십자가의 영광을 사모하며 예수님께서 얻은 그 영광을 소망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영광이 참 영광인줄 알고, 그 영광의 길을 기도하고 간구하며 기쁨으로 증거 하면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영광되게 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구할 영광입니다. 나의 영광과 세상의 칭찬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볼 때 가장 초라하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얻은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같이 큰 영광을 주십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일반적인 운명으로 밖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안에서 이루어지는 죽음, 우리 자신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날마다 죽는 자유로운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에 대하여 날마다 죽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에 넘겨주시는 것은 친히 우리 안에서 사시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내적인 죽음은 자라서 외부에서 다가오는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육체적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의 성취가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임종의 순간에 “다 이루었다”하고 말씀하신 분과 함께하는 공동체에 들어가게 됩니다.” - 에릭 메택시스(Eric Metaxas), 『디트리히 본회퍼』(Bonhoeffer)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1. 내가 바라고 원하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2. 죽음을 가장 고귀한 시간으로 인식하고 영광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함께 드리는 기도“하나님 아버지,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힘입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빛의 자녀로 살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식하며 그 날을 준비하는 영광의 길을 가게 하시고 다음 세대에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주의 백성 되게 지켜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도서 추천랍 몰(Rob Moll), 『죽음을 배우다』(The art of dying: living fully into the life to come)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 된 성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두렵고 소멸되는 고독한 사건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지속되는 영원한 교제임을 깨닫게 합니다. 죽음이 삶과 신앙에 얼마나 깊이 관계하고 있는지 그리고 성도의 죽음이 신앙생활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