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1]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는 날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 고린도후서 5:1 - 죽음은 항상 현재적이며 반드시 직면해야 할 중요한 사건으로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런 죽음의 인식을 통해서 얻는 깊은 깨달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계관, 다른 말로 인생관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죽음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면 부분적 진리에 이끌리는 인생관으로 허무한 생을 살게 됩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죽음을 바르게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된 세계관, 인생관으로 오늘을 삽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영생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기에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소망 중에 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에 세상 중심의 삶이 아닌 영원지향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인식함으로 깨닫는 것들먼저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죽음 이후 최후의 심판, 천국과 지옥이 있음과 죽음을 통해서 영원으로 나아가 영생의 삶을 완성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여 세상 속에서 천국을 갈망하고 준비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천국을 믿기 때문입니다. 움직이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음을 성경은 선언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의 날은 천국으로 가는 날이요, 영생으로 이어지는 날입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회피가 갈망으로 바뀌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림-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갈릴리 호수의 그리스도>Christ on the Sea of Galilee, 1841) 둘째,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인식함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잠깐이고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속한 천국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고 말씀합니다.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세상에 있는 것이 임시적이고 결국 사라질 것, 즉 ‘장막 집’임을 깨닫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저 마지막 때를 바라보며 오늘을 생각하고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사건으로 믿기에 나의 몸도 다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사도신경을 통해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을 고백합니다. 영생과 부활의 영광을 덧입기를 소망합니다. (그림-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갈릴리 호수의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1633) 셋째, 그리스도인은 육체가 무너지는 죽음의 날이 있음을 깨달아 소유 중심, 세상 중심,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납니다. 세상 사람은 죽음 너머의 신령한 세상이 있음을 알지 못하니 모든 노력이 육체를 위한 것에 그칩니다. 세상의 수많은 불의와 비극은 육체가 편안하고 즐거운 것에만 집착하고 여기에 많은 시간과 열정, 물질을 허비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무엇인지 모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살다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수록 영생을 더욱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요5:24). 천국인의 삶, 영생의 삶은 사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세상 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이요, 천국 복음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을 믿기에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변화된 세계관 속에서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죽음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상상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 공포 앞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천국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오늘의 사건을 재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에게는 죽음조차도 영광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조금 지나면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말씀하신 것도 죽음 이후에 부활과 신령한 세계가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남겨주신 소명을 따라 삽니다.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 세상 속에서 영생의 삶을 살게 하심을 깨닫습니다(요 17: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 요한복음 16:20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 요한복음 17:2 - (그림-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The Parable of the Rich Fool, 1627) 그리스도인이 장례식에서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고 영원한 진리 속에서 죽음을 재해석하기에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신 성령이 항상 천국을 바라보며 천국 진리 안에서 오늘의 사건을 재해석하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죽음을 인식하며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믿으며 천국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 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당신이 죽음의 실체를 인정하는 순간 삶이라는 실체도 인정해야만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고, 지금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것은 지금의 이 삶뿐임을 깨닫는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것이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 Ross), 『인생수업』(Life Lessons)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1.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생각하는 중에 깨닫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얼마나 죽음을 인식하고 잘 준비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2.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에서 천국을 갈망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전지전능하신 은혜의 하나님, 진실로 성령의 역사 속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영원한 하늘의 집을 갈망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 이 땅에서 영생의 삶을 시작하며 새로운 차원의 담대한 인생을 충만히 살아가는 모든 주의 자녀 되게 지켜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도서 추천존 오트버그(John Ortberg), 『인생, 영생이 되다』(Eternity is Now in Session) :이 책은 영생이 단지 미래의 삶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바로 여기서 지금 누릴 수 있는 생명임을 설명합니다. 복음은 ‘지금’ 하나님의 통치와 권능 아래서 살 수 있다는 선포로, 영원은 현재 진행 중임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