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장악됨으로써 세계인의 관심이 그 지역과 이슬람으로 모였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특히 한국 교계에서 그러한 관심은 오래 가지 못한 단발성에 그쳤으며 여전히 화두는 팬데믹이다. 이슬람에 대한 이러한 단발적 관심은 한국 교계의 상당한 선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에서 선교적 열매가 적은 이유이며, 한 세대 전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이유이기도 하다.이슬람에 대한 수많은 오해가운데 몇 가지는 이슬람은 중동에 국한된 국지적 종교이며, 일관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신봉자들 가운데는 개혁적 성향의 신자들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견해는 편견이거나 단편적 이해이다. 이슬람은 다른 세계 주요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분포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Unity와 Diversity의 인정과 강조 사이에서 내홍을 겪는 일반적인 종교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슬람 사가인 아이라 라피두스[1]의 말대로 이슬람은 “아프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에서 남태평양까지, 그리고 시베리아 스텝지대에서 남아시아의 외딴 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지역의 종교이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들로는 “베르베르인, 서아프리카인, 수단인,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동아프리카인, 중동의 아랍인; 터키인; 이란인,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과 페르시아인, 아프간인, 파키스탄인, 인도인과 중국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대다수의 민족, (소수의)필리핀인 등이다...방대한 무슬림 인구는 민족적인 배경, 언어와 관습, 사회조직과 정치체제, 문화와 기술의 형태면에서 극히 다양한 인간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적, 민족적 배경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인 것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이슬람이 이들의 삶의 전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슬람은 무슬림들의 자의식에 깊이 침투해 있고, 그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규제하며 그들의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구원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킨다. 형언하기 어려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인류의 거대한 정신적 공동체 (중 하나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명칭: 이슬람세계 여러 종교들 중에서 이슬람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지어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이란 단어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나와 있으며“(꾸란3:19)[2], 이를 근거로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종교체계의 신적인 기원을 주장하며, 그 신앙체계를 지칭하는데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이슬람이란 단어의 뿌리가 되는 동사는 “복종하다,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다, 전적인 헌신으로 자신을 주다”라는 의미의 “아슬라마”이며, “평화”, “복종”이라는 단어와 어근을 같이 한다. 또한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일컬어 “무슬림”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히 이슬람 교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무슬림들이 모여 알라에게 예배하는 장소는 모스크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영어 명칭이고 아랍어로는 마스지드이다. 마스지드도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장소, 즉 건물을 의미하지 않고 “부복(俯伏)의 집”(The House of Prostration)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그 종교의 명칭인 이슬람이 “복종”을 의미하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명칭이 “복종하는 사람들”의 뜻을 가지며, 그들이 예배하는 곳이 “무릎을 꿇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정서와 신념의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한분이신 신 알라와 그에 대한 철저한 복종”, 그것이 이슬람인 것이다. 알 자힐리야 (Al-Jahiliya, 무지의 시대): 이슬람 이전시대 세계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이슬람도 아무 것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실 이슬람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아라비아, 그 중에서도 홍해 연안의 히자즈(hejaz) 지역은 이슬람이 도래하기 이전 당시 다른 중동 지역에 비해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뒤떨어져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체계를 갖춘 종교를 기반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아랍인들은 360여개가 넘는 우상들과 그보다 하위적 존재인 다양한 정령들을 숭배하며 부족 중심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지금도 무슬림들이 평생 한 번은 방문하고 싶어하는 성지이며 하루에 다섯 번씩 예배를 드리는 방향에 위치한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의 카바(ka’ba) 신전은 사실은 이슬람의 성지가 아니라,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360여개의 남녀 우상을 모아 놓은 우상 숭배의 신당이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슬람 이전시대에 행했던 몇 개의 의례들이 적절한 신화화와 상징적 재해석을 통하여 무함마드에 의해 계승되어졌고 오늘에 이어져 이슬람의 이름으로 무슬림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랍인들의 종교적 상황과 달리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앙 아라비아(Hijaz), 메카 복동쪽의 야쓰립(Yathrib, 후에 메디나가 됨), 중남부 지역의 나즈란(Najran)에는 유대교와 기독교 공동체가 흩어져 살고 있었다. 4세기 초에 아비시니아 왕의 개종으로 남부 아라비아 왕국 옆에 강력한 기독교 국가가 탄생하였는데 그곳이 현재 내전으로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이다. 중앙 아라비아의 오아시스지역, 특히 카이바르와 야쓰립에 유대교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남부 아라비아에서는 6세기에 힘야르의 왕 유수프 아사르가 유대교로 개종하였으며, 조로아스터교도 남부 아라비아에 전파되어 무함마드가 태어나던 해인 570년경에는 아랍인의 일부가 개종을 하기도 하였다. 라피두스는 이러한 상황을 “일신교의 영향 속에 둘러싸인 아라비아 반도” 라고 표현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태어나 종교적으로 예민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무함마드는 일신교에 대한 강렬한 종교적 욕구를 가지게 된 것이다.[1] Ira M. Lapidus, 『이슬람의 세계사』, 이산, 2008, 15.[2] “알라와 더불어 있는 종교는 이슬람 뿐이다…”, 김용선 번역 『꾸란』,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