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삶: 하나님의 기억 속에 살아가기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억의 총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기억하고, 다른 이들을 기억하는 만큼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와는 별개의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치매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은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할 때 나로서의 존재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기억의 소멸은 존재의 소멸이다 수년 전 아주 재밌게 봤던 디즈니의 만화영화 ‘코코’가 생각납니다. 이 영화는 사후세계에 대한 멕시코의 민담을 줄거리로 합니다. 한 집안이 등장하며 코코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입니다. 그 집안의 손자인 미구엘은 음악을 사랑하고 재능도 있는데 이상하게 그 집안에서는 음악을 금기시합니다. 어느 날 미구엘은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핵토르라는 떠돌이 혼령을 만나고 둘은 친구가 됩니다. 사기꾼인줄 알았던 핵토르는 사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핵토르는 지상에서 더 이상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자신의 존재도 소멸된다고 걱정했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기억하는 이는 딸 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구엘은 그 핵토르가 바로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서 의자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던 할머니 코코가 바로 그 핵토르의 딸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미구엘은 급하게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할머니 코코 앞에 섭니다. 그리고 집에서 금기시됐던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래는 바로 핵토르가 돈을 벌려고 여행을 떠나기 전 사랑하는 어린 딸 코코에게 불러줬던 노래입니다. 평소에 제대로 의식을 차리지 못했던 코코 할머니는 손주 미구엘이 들려주는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족에게 전해줍니다. 이로 인해서 사후세계의 핵토르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민간종교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게서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억과 부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인간 존재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내가 무엇을 기억하느냐도 나로 존재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일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가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 간다고 해도, 만일 과거의 죄와 허물, 상처, 또는 수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한 존재로서의 삶일까 하는 점입니다. 혹자는 농담으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총 천연색의 대형화면으로 사라생전에 지은 모든 죄를 공개 상영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경종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 그러한 곳이라면 천국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예수님의 죄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도 너무 빈약하게 취급되는 것입니다. 만약 보통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 극단적인 고통이나 비극을 경험한 경우에는 어떨까요? 홀로코스트와 같은 집단학살이나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희생자들이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간다면 그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과거 육신의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부활한다면 그게 과연 나라는 존재로 연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나일까요, 다른 존재일까요? 저는 윤회설에서도 이러한 모순을 보게 됩니다. 선행을 쌓아야 다음 생에서 미물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설령 윤회설을 가정해도, 우리가 지금 우리의 전생을 모르는 만큼 우리 자신의 다음 생에서도 전생을 기억 못할 텐데 그게 나라는 존재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기억이 달라진다면 더 이상 동일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최고의 기억은 무엇인가? 영화 한 편을 더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역시 기독교 영화는 아니지만, 죽음 이후의 기억에 관해서 가장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원더풀 라이프’라는 이 일본 영화는 죽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상의 중간역인 림보에서 7일간 머물며 자기가 살았을 때 경험한 것 중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림보의 직원들은 죽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 하나를 선택하면 그 추억을 영상으로 재현해줍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망자들에게 선명히 되살아난 채로 천국에서도 유일하게 기억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디즈니랜드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선택하고, 다른 이는 아이를 낳던 경험을, 또 다른 이는 비행기를 조종했던 때를 각각 선택합니다. 어떤 이는 의도적으로 기억의 선택을 거부하기도 하며,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회사원은 특별한 추억을 떠올리지 못해서 힘들어 합니다. 망자들은 7일 동안 고민하면서 영화로 재현할 추억을 고르게 되며, 림보의 직원들은 그 과정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정말로 소중한 사랑의 기억을 찾는 이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기억 속에 사랑받는 존재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분의 소중한 자녀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억과 정체성은 신학적으로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심을 통하여 부여”됩니다.1) 그리고 우리의 육신적 부활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물이라면 그 새로운 육신의 기억 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리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내세는 하나님의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억에 관해서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아니하시고(히8:12; 10:17), 우리의 허물을 도말하시며(사43:25), 우리의 악행을 사해주십니다(렘31:34).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지우고 숨기고 싶으며, 여전히 떨치기 힘든 죄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연합되기를 진심으로 간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천국에 익숙한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부활의 날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억되는 존재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윤리학자 트리즈 라이서트(Therese Lysaught)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스라엘과 인간은 망각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심지어 망각될 때도 여전히 기억하시는 일을 계속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임을 기억하시고 우리 사이에 거하시며, 우리의 망각을 자신의 육체의 고통과 부활, 용서로 감당하신다. 다른 말로 하자면,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기억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실존적 망각이라는 폭정에 노예가 되어 있을 때 죽음을 이기게 하셨다.2)1)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듦에 관하여』 (서울: 두란노, 2021), 448.2) Ibid., 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