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소망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 ⑧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 2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1538년에 「시뮬라크르, 죽음의 역사적 얼굴」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소형판의 책은 내용은 물론 외형상으로도 중세의 그림 전통과 결별하고 있다. 각 그림은 라틴어 성경 구절, 6.5*5cm 크기의 목판화, 그리고 불어로 된 4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라틴어 성경 구절은 그림의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고,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운(韻)을 이루는 4행시는 그림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논평 역할을 한다. 한스 홀바인 ‘죽음의 춤’(1538) 그때까지 죽음의 춤에서 일반적이던 죽음과 등장인물 간의 대화는 사라졌다. 관람자에게 그림을 설명해주는, 중세 죽음의 춤에 전형적으로 나오는 권위자도 더는 없다. 각 그림에 제목이 붙지 않아 그림을 보는 자는 등장인물에 대한 신원 파악을 스스로 해야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분별하는 일은 그닥 어렵지 않다. 다만 각 그림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관련된 역사 지식에 따라 더 풍부해질 수도, 단순해질 수도 있다. 홀바인의 ‘죽음의 춤’ 초판은 모두 41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4편은 각각 창조, 유혹, 추방, 타락의 결과를 표현한다.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앞부분에서 가져온 주제들이다. 다섯 번째는 묘지 장면이다. 이 그림은 이전에 나온 네 편의 그림과 이후에 나올 34편의 그림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다음 34편은 교황, 황제, 왕, 추기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소환하는 34명의 인물을 보여준다. 이어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최후 심판 장면이 나온다. 최종 그림은 죽음의 문장(紋章)이다. 이 41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야기는 창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아담과 이브의 삶 속에 어떻게 죽음이 들어왔는지를 알려준다. 이로 인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장면에서부터 해골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죽음이 의인화된 모습이다. 이제 죽음은 각계각층, 남녀노소, 각종 직업군을 대표하는 34명의 사람을 한 명씩 무덤으로 소환한다. 이들은 홀바인이 살던 시대의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 그러고 나서 모든 인류는 최후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마지막 죽음의 문장은 마치 이 모든 이야기가 참되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봉인의 역할을 하고, 동시에 이 이야기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연결됨을 보게 된다. 첫 다섯 장면은 인류 역사에서 죽음의 ‘기원’을 알려주는 ‘과거’를 다룬다. 다음의 34장면은 홀바인이 살던 시대에 죽음이 불러내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현재’를 표현한다. 최후 심판은 ‘미래’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그들의 신분과 삶의 정황을 쉬이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홀바인은 다양한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화가 중 한 명이었다. 모델에 대한 냉정하고 예리한 관찰, 인물의 성격에 대한 철저한 이해, 객관적이고 명확한 세부 묘사가 작품의 특색을 이룬다. 그의 초상화가 단순한 초상화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다. ‘죽음의 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작품을 이전의 죽음의 춤과는 달리 훨씬 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세밀히 그려진 각 장면의 배경 역시 상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은 준다. 이 점에서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배경에 풀 몇 포기만 있는 파리의 ‘죽음의 춤’과는 상당히 다르다. 배경과 등장인물의 이런 사실적 묘사는 보는 이에게 화가의 메시지를 좀 더 실감 나게 전달해준다. 이로 인해 보는 이는 그 메시지가 던지는 경고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다. 각 장면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각기 다른 구체적인 일상의 상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림 속에서 황제는 궁정의 왕좌에서, 수녀원장은 수녀원에서, 판사는 집무실에서, 설교자는 교회의 설교단에서, 의사는 병원에서, 선원은 배에서, 행상인은 노상에서, 쟁기질하는 사람은 밭에서 평상시와 별반 다름없이 늘 하던 일을 하고 있다. 보는 이는 상상력을 동원해 홀바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함께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극히 일상적인 듯 보이는 각 등장인물의 행위다. 이를 잘 관찰하면 이들이 죽음의 느닷없는 방문 직전까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정직하고 성실히 감당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삶의 자세와 모습을 보면 언젠가 자신의 삶에 끝이 있고, 그 삶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임을 고려하며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이런 그들의 일상 속으로 죽음이 휙 들어온다. 등장인물과 주변 인물의 경악하는 표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급작스러운 죽음의 침입은 참으로 낯설고 가히 충격적이다. 죽음과 최후 심판에 대비하지 않은 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한일서 2:16)에 따라 산 등장인물을 해골이 어디로 끌고 갈지는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홀바인의 ‘죽음의 춤’은 인간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피력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의 그림은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음에 대비해야 할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도전한다. 이와 함께 홀바인의 ‘죽음의 춤’을 보며 사색할 또 다른 요소는 죽음의 모습과 예기치 못한 죽음의 출현에 각 인물이 보이는 반응이다. 초기 죽음의 춤 작품들과는 달리 홀바인의 ‘죽음의 춤’에서 죽음은 상대적으로 더 난폭하고 거친 모습을 보이며, 등장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체념이나 순응의 태도보다는 경악하고 두려워하는 감정과 저항하는 자세를 보인다. ♠ 계속 ♠ 참고자료, 출처https://en.wikipedia.org/wiki/Danse_Macabrehttps://www.gutenberg.org/files/21790/21790-h/21790-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