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소망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 ⑧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 7 21. 설교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이사야 5장 설교자가 설교단에서 신자들에게 유창한 말솜씨로 설교하고 있다. 신자들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죽음이 목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성직자의 영대(領帶)를 착용하고 설교자 뒤에 서 있다. 죽음의 오른손에는 턱뼈가 들려있고 그것으로 설교자의 머리를 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치 입만 열심히 놀리면서 말만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설교자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복음을 왜곡하거나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여 가르치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설교자를 고발하고 있는 것 같다. 22. 사제/목사 나는 참으로 필멸의 사람이라 지혜서 7장 사제가 신자들과 함께 병자에게 가고 있다. 그런데 성당지기의 모습을 한 죽음이 모래시계를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왼손에는 종을 들고 오른손에는 등불을 들고 사제를 이끌고 있다. 사제는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살피고,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죄의 고백을 들으며 종부(병자)성사를 집례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사제를 무덤으로 인도하고 있다. 사제가 죽음을 피해 가며 영원히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가 임종을 지켜보고 종부(병자)성사를 집례해주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이 그림은 사제에게 바로 그 죽음의 시간이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23. 탁발 수도사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에 매임은시편 107편 탁발 수도사가 조그마한 헌금함과 가방을 들고 구걸하러 다니며 돈으로 그득 채웠다. 수도사의 일차적 관심사가 돈인 듯 보인다.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수도사의 이상과 모순되는 모습이다. 이때 죽음이 다가와 수도복의 후드를 양손으로 꽉 쥐고 힘차게 뒤로 당기고 있다. 돈이 가득한 헌금함과 가방을 둘러매고 있는 수도사는 너무나 당황한 모습이다. 죽음에게 돈을 빼앗기지 않고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질하고 있다. 24. 수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4장 젊은 수녀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얼굴은 류트를 연주하고 있는 한 젊은 남성에게 향해 있다. 수녀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애인에게 집중하고 있다. 수녀는 하나님께 독신 서약을 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젊은 수녀의 표리부동과 위선을 드러낸다. 이 와중에 죽음은 흉측하고 심술궂은 노파의 모습으로 등장해 제단의 촛불을 끄고 있다. 수녀의 기도가 전혀 무의미한 것이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리고 수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임을 보여준다. 25. 노파 삶보다 죽음이 낫고집회서 30장 노파가 숨이 찬 듯, 힘이 드는 듯 얼굴을 숙이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몸이 전반적으로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노파의 모습은, 오랜 세월의 인생 풍파에 시달린 노쇠한 몸을 지팡이 하나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듯한 상황을 보여준다. 신체적으로 쇠약해진 몸은 왼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죽는 순간까지 신앙에 의지하려는 듯 오른손에 묵주를 꼬옥 쥐고 있다. 해골 하나는 덜시머를 치며 앞장서 걸어가고 있고 다른 해골은 노파를 보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노파를 무덤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비참한 삶보다 죽음이 낫고 지병보다 영원한 휴식이 낫다”집회서 30:17 ♠ 계속 ♠ 참고자료 https://www.gutenberg.org/files/21790/21790-h/21790-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