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소망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 ③ 중세 유럽의 지혜: 메멘토 모리, 죽음의 기술, 죽음의 춤 중세 유럽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를 배우고자 할 때 대표적인 예를 ‘메멘토 모리’, ‘죽음의 기술’, ‘죽음의 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 로마제국이다. 개선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다. 그를 위해 화려한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다. 노예 한 명이 마차를 타고 가는 장군 뒤에서 소리를 지른다. ‘메멘토 모리!’ 수많은 인파가 둘러싸며 환호하고, 인생의 절정에 이른 것 같은 자신감과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살아 있음의 환희에 최고조로 취해 있을 때, 이 외침이 개선장군의 귓전을 때린다. ‘메멘토 모리!’ 전쟁터에서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극복하고, 다른 수많은 사람은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살아 온 불사신 같은 존재라는 오만함이 마음속에 차고 넘칠 때 이 외침이 들린다. ‘메멘토 모리!’ 너무 우쭐대지 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그늘은 항상 네 위에 드리워져 있다. 너도 전쟁터에서 본 그 수많은 시체처럼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겸손히 처신하라. ‘메멘토 모리’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정물화는 바니타스화라 불린다. 라틴어 바니타스(vanitas)는 공허, 헛됨, 허무, 허영(vanity)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전도서 1:2와 12:8이 자주 인용된다. 개역개정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틴어 성경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킹 제임스 성경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바니타스 정물화는 일반적으로 두개골(죽음의 필연성, 죽음의 상징), 썩은 과일(부패), 거품(인생의 짧음과 죽음의 갑작스러운 성격), 연기, 시계, 모래시계(한정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인생의 짧음, 절제의 상징), 악기(인생의 간결함과 덧없음), 꺼진 등잔과 촛불(시간의 필연적 경과, 죽음의 임박), 책(지식의 무용함), 골동품 등을 통해 ‘메멘토 모리’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토니오 데 페레다(Antonio de Pereda), ‘허영의 우화’(Allegory of Vanity, 1636) 출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Antonio_de_Pereda 2.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아르스 모리엔디) 아르스 모리엔디의 의미는 죽음의 기술이다. 죽음을 위한 기술을 뜻한다. 죽음의 예술이라 해도 좋다. 죽음을 위해 무슨 기술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죽음도 미리미리 준비하며 연습해야 웰다잉을 맞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르스 모리엔디’는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종교적 소책자나 기도서 제목이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를 다루었다. 하나는 죽음을 지혜롭게 준비하고 맞이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올바로 사는 방법, 즉 ‘삶의 기술’(Ars vivendi, 아르스 비벤디)도 다루었다. 다른 하나는 죽어가는 자의 임종을 돕는 방법과 장례 절차 등이었다. 모든 글의 기본적 전제는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사는 동안 공동체 안에서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도 알렸다. 아르스 모리엔디 문학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이 주인공처럼 등장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병상을 중심으로 모여 그의 임종을 지켜본다. 생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때가 이르면 자신이 죽음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옆에 있어 줄 손님을 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 구성원들은 함께 죽음을 미리 연습했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이웃이 죽었을 때 어떻게 처신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시간이 지나면서 삽화가 추가되기도 했다. 흑사병, 백년전쟁, 기근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세상을 일찍 떴던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유사한 내용의 글이 많이 나왔다. 특히 흑사병으로 성직자 역시 대거 사망하면서 목회적 돌봄을 베풀 인력이 부족해졌을 때 『아르스 모리엔디』 소책자나 기도서는 신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는 이런 안내서가 필요하다.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아르스 모리엔디에 담긴 지혜는 우리가 어떻게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 알려준다. 몇 가지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갑작스레 죽음에 직면해 무조건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도록, 당황하여 침착하게 죽음의 절차를 밟아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전적으로 병원과 의료장비에 맡기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어느 순간에는 죽음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3. 죽음은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사건이다.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공동체가 필요하다. 4. 공동체는 죽어가는 사람이 죄를 뉘우치도록 도와주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도록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한다. 아르스 모리엔디 장르는 15세기 중후반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0세기 초반까지 수백 년 동안 유럽과 미국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후 죽음의 기술은 힘을 잃었다. 아르스 모리엔디는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좋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지만 20세기 초반부터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한 채 풍족한 삶을 누리는 데만 집중했다. 이들에게 죽음과 죽음을 향한 과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심페소생술과 인공호흡기는 물론이거니와 장기 이식 수술 등으로 무한정 생명을 연장하고 죽음도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음은 점점 더 잊혀간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면 인생의 유한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스 모리엔디’는 죽음에 관한 지혜를 담은 지침서요, 건강할 때 미리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을 담은 안내서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 오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 보관해야 하는 책이었다. 3. 죽음의 춤Danse macabre(당스 마카브르) 죽음의 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블랙 원피스를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펼치던 김연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춤과 샤를 카미유 생상의 ‘죽음의 춤’은 아이스링크 안에서 완벽히 하나가 되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생상의 ‘죽음의 춤’ 악보 표지에 사용된 마카엘 볼게무트(Micahel Wolgemut)의 ‘죽음의 춤’ 그림(1493년)출처 위키백과; amazon.com 생상의 ‘죽음의 춤’ https://youtu.be/71fZhMXlGT4 춤추는 죽음을 묘사한 그림인 죽음의 춤은 중세 죽음의 문화를 대표하는 장르의 하나였다. 원래 교회나 수도원 또는 공동묘지 벽에 그려진 실물 크기의 벽화(프레스코) 주제로 사용되었다. 이후에는 목판화로 크게 인기를 누렸고, 음악과 문학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죽음 또는 죽은 자는 해골이고, 산 자는 교황과 황제로부터 시작해 당시 사회를 대표하는 다양한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인간 군상은 엄격한 서열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갈수록 사회적 신분의 서열이 낮아진다. 죽은 자와 산 자는 각각 한 쌍을 이루고 있고, 이들이 모여 큰 원을 그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죽은 자의 동작이 더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춤을 주도하는 쪽이 죽은 자임을 알 수 있다. 각 그림에는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대화를 담은 짧은 운문이 있다. 죽음의 춤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죽음 앞에 특권이 없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필연성과 공평함을 강조하면서 ‘메멘토 모리’를 호소한다. 죽음의 춤은 16세기에 정점을 찍고 차츰 수도원과 공동묘지에서 사라져갔지만, 18, 19세기에 나온 작품들도 있다. 여기서 원래의 종교적 의미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주제는 현대 화가들의 작품에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