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소망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 ⑥ 파리의 죽음의 춤 I 프랑스의 수도 파리. 이곳에는 센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강에는 <퐁뇌프의 연인들>이란 영화로 잘 알려진 퐁뇌프 다리가 있다. 의미는 ‘새로운 다리’인데 역설적이게도 사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한강을 건너가면 교통망의 중심지인 서울역이 나오듯, 북쪽으로 이 다리를 건너가면 레알(Les Halles)역과 샤틀레(Châtelet)-레알역이 나온다. 파리의 중심에 위치한 레알은 1970년대 초까지 파리 중앙시장이었고, 현재는 생태 산책공원과 유리 지붕으로 덮인 대형 쇼핑공간과 지하 상업 센터 및 수영장과 영화관 같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무한정 살 것처럼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대변하는 장소다. 여기에 인생이 죽음에 의해 순식간에 끝날 수 있으니 대비하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공원과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단장한 이 파리의 중심지는 1786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였다. 죽음이 늘 곁에 있고, 매순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였다. 이 묘지는 12세기에 생 이노상 교회 부속으로 마련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다시 큰 관심을 끌었던 중세 유럽의 페스트가 창궐했던 1348~1351년에는 더 이상 매장할 곳이 없어 묘지 출입이 금지되었다. 14세기와 15세기에 묘지 벽을 따라 납골당을 짓고, 새 시신을 묻기 위해 옛 무덤에서 발굴한 유골을 그곳에 차곡차곡 쌓았다. 1780년에 교회와 묘지가 폐쇄되었고, 1786년에 위생과 악취 등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무덤에 묻힌 시체를 발굴하여 모든 뼈를 카타콩브Catacombes로 옮겼다. 1787년에 생 이노상 교회를 철거하고, 공동묘지는 이노상 광장(조아킴뒤벨레 광장)이 되었다. 이 광장 중심에 역사속의 이노상 교회와 공동묘지를 품고 이노상 분수가 서 있다. 이 분수는 1549년에 교회 벽에 세워졌다가 벽에 붙어있던 면을 새로 만들어 18세기에 광장 가운데로 이전했다. 이노상 분수출처 위키피디아 Fontaine des Innocents - Wikipedia 바로 이 파리의 중심지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삶은 끝나기 마련임을 깨닫고, 급습하는 죽음에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외침의 근원지는 바로 ‘죽음의 춤Danse Macabre’ 벽화였다. 1424년에서 1425년 사이에 묘지의 남쪽 납골당 아래 아케이드 벽에 그려진 이 벽화는 ‘죽음의 춤’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적인 그림이요 최초의 그림 연작물이다. 이것은 벽을 철거한 1669년에 파괴되었기에 기요 마르샹(Guyot Marchant)이 1485년에 간행한 책과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가지고 재구성되었다. 출처 페도르 호프바우어(Fedor Hoffbauer), 『시대를 관통하여 보는 파리Paris à travers les âges』(1876-1882) http://www.dodedans.com/Exhibit/Image.php?lang=e&navn=paris-1552 1552년 생 이노상 교회와 네 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생 이노상 공동묘지.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에 ‘죽음의 춤’이 그려져 있었다. 파리의 ‘죽음의 춤’은 수많은 서적판으로 발간되었고, 필사본 및 교회나 묘지의 담장에 복제되었다. 납골당, 아케이드, ‘죽음의 춤’ 벽화출처 페도르 호프바우어(Fedor Hoffbauer), 『시대를 관통하여 보는 파리Paris à travers les âges』(1876-1882) http://www.dodedans.com/Exhibit/Image.php?lang=e&navn=innocents-arcade 이 벽화에는 총 17편의 그림이 있었다. 권위자(저자)가 등장해 ‘죽음의 춤’을 소개하고 매듭짓는 첫 그림과 마지막 그림은 일종의 전체 그림에 대한 도입과 마무리 역할을 한다. 그 중간에 있는 15편의 그림에는 60명의 실물 크기 인물이 등장한다. 30명은 죽은 자이고, 30명은 살아 있는 자다. 매 그림마다 교회와 국가의 각 신분을 대표하는 살아 있는 자들이 두 명씩 등장하는데 각각 해골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이 인간 군상에는 교황과 황제, 추기경과 왕, 총대주교와 총사령관, 대주교와 기사, 주교와 귀족, 수도원장과 집행관, 점성술사와 시민, 성당 참사회원과 상인, 카르투시오회 수도사와 경사, 수도사와 고리대금업자, 의사와 구혼자, 변호사와 음악가, 사제와 농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와 아이, 교회 서기와 은둔자가 나온다. 이 일련의 그림을 쭉 보고 있자면 죽음의 무차별적 급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각 그림의 하단에는 8행의 대화시가 기록되어 있다. 항상 죽은 자가 먼저 대화를 시작한다. 첫 번째 그림에는 천사와 함께, 책상 앞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권위자(저자)가 등장하여 죽음의 춤을 소개한다. 오! 이성적 피조물이여,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존재여.여기에 그대의 유한한 삶을 올바로 마치기 위해주목할 가치가 있는 지혜가 있도다.그 이름은 죽음의 춤이라네누구나 이 춤을 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네.이 춤은 남자와 여자에게 필연적이라네죽음은 작은 자든 큰 자든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네. 이 거울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다네자신도 같은 춤을 추게 될 것을.거울에 자신을 잘 비추어보는 자는 현자라네.죽은 자가 산 자를 데려간다네,그대는 가장 위대한 자들이 먼저 시작하는 것을 볼 것이네죽음이 강타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기에.그것을 생각하는 일은 애처롭기 짝이 없다네.만물은 같은 물질로 만들어졌나니. 일련의 죽음의 춤 그림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이 첫 벽화에서 권위자는 영생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춤이다.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난 이는 누가 되었든 이 춤을 익혀야 한다. 누구도 이 춤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권위자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는 현명한 자라고 말한다. -계속-출처 및 참고문헌http://www.dodedans.com/Eparis.htm울리 분덜리히/ 김종수 역. 『메멘토 모리의 세계: ‘죽음의 춤’을 통해 본 인간의 삶과 죽음』. 도서출판 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