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죽음 ③죽음을 알고 준비하자 III. 사후세계 1. 지옥, 림보, 연옥, 천국 루터는 당시 죽음 후에 가는 곳이라고 알려진 다섯 장소를 다룬다. 그곳은 지옥, 세례를 받지 못한 유아들이 가는 유아 림보,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살았지만 의롭게 산 선조들이 가는 선조 림보, 연옥, 그리고 천국이다. 단테의 신곡 : 지옥, 연옥, 천국출처 wikimedia(wikimedia.com) 최후의 심판출처 wikipedia(wikipedia.com) 첫째, 지옥을 다룰 때 루터는 지옥 자체보다는 지옥의 이미지가 그리스도인에게 초래하는 시련과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이로 인한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것은 루터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이다. 따라서 루터는 이 문제를 결코 경시하거나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의 약속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지옥의 이미지가 아무리 맹공격할지라도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겨내야 하며, 이길 수 있다. 이와 함께 루터는 믿지 않는 자들의 영혼이 사후 곧바로 고문받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눅 16:19-31)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하지만 베드로후서 2장 4절과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이에 반대되는 내용을 전달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루터는 이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어떤 단정적인 발언도 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출처 wikipedia(wikipedia.com) 둘째,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실제로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원죄를 씻겨주는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유아는 유아 림보에 간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루터는 이런 유아가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떻게 되는지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루터는 구약성경의 의로운 선조들이 간다는 선조 림보는 부적절한 사고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선조 림보는 차라리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제안한다.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자는 그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의지했던 말씀의 약속으로 구원받았고, 죽을 때 생명 안으로 들어갔다. 림보에 계신 예수출처 wikipedia(wikipedia.com) 넷째,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연옥 사상에 대해 루터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시발점이 된 면벌부 반박 95개조 논제에서 문제 삼는다. 연옥은 신앙인이기는 하지만 지은 죄에 대해 이생에서 보속 행위를 충분히 하지 않은 자들이 간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루터도 처음에는 연옥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개혁으로 인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오직 성경으로’를 강조한 루터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연옥 교리를 거부한다. 연옥에서 영혼을 구하는 천사출처 wikipedia(wikipedia.com) 다섯째, 천국에서의 삶에 관해 루터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명한다. 사후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하며 영적이며 천사 같은 삶일 것이다. 성경이 묘사하는 영원한 삶에는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결혼도 없다. 지상에서의 모든 것과 현세에서 필요한 모든 것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영적인 삶은 지상에서의 삶이 다스려지는 것처럼 그렇게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主)가 되어 통치할 것이며 그 통치는 영원할 것이다. 이처럼 루터는 림보와 연옥 개념을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인간적인 고안물로 간주하고 거부한다. 그리고 창세기를 강해하면서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는 표현에 주의를 기울인다. 루터는 이 말씀에 기초해 사후 처소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창 25:8)라는 표현은 부활과 내세에 대한 주목할 만한 증거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함께 사는 사람들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35장 29절에도 이삭이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라는 표현이 나온다. 루터는 다시 한번 이 표현법이 죽은 자들의 부활을 입증해 준다고 말한다. 이삭은 그의 열조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 안에 함께 모여 있고, 그곳에서 평안히 쉬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부활할 것이다. 창세기 49장 33절에는 야곱이 “그의 백성(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라고 묘사되어 있다. 루터에 의하면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 표현법은 태초부터 성인들은 믿음과 부활에 대한 소망 가운데 잠들었음을 증명한다. 이 표현법에 근거해 루터는 사후에 가는 곳이 어디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다룬다. 하나님께는 성인과 선택된 자를 데리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죽음도 고통도 지옥도 없이 안식을 누린다. 하지만 그곳이 어떤 종류의 장소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성경은 이곳을 “열조/백성”이라 부른다. 분명한 사실은 그곳에서 성인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히 쉬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와 다른 성인들이 간 곳을 아브라함의 품이라 부른다(눅 16:22). 구체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정의해야 할지 루터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신학계의 거장인 아우구스티누스조차 모른다고 했기에.... 다만 아브라함의 죽음 이전에 아브라함의 품이 있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오심 이후 더는 아브라함의 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품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더 나은 품, 즉 그리스도의 품이 아브라함의 품을 대체했다. 따라서 우리는 사후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안식과 영생을 누릴 것이다. 이처럼 사후에 영혼이 어디 있는지의 문제를 다룰 때 루터는 기본적으로 무익하고 헛된 생각은 버려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고 평안히 죽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점, 고난과 시련을 벗어나 영원한 평화와 안전을 누린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2. 연옥 문제 죽음에 대한 루터의 가르침에서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연옥에 관한 것이다. 루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그의 핵심적 개혁 사상으로 죽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연옥을 거부했다. 루터는 면벌부 논쟁 초기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연옥 교리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연옥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95개조 논제에 대한 해설』 (1517) 제15항에서 루터는 “연옥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라고 썼다. “라이프치히 논쟁” (1519) 역시 연옥의 존재를 전제로 삼고 있다(제6항, 제8항, 제9항). 하지만 루터의 입장은 변했고 단호히 연옥을 부인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한 모든 전구(轉求, intercession)를 공격했다. 1521년 『미사의 오용』에서는 “연옥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라고 외쳤다. 루터는 죽은 자들의 영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것들은 악마의 유령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위령미사를 규탄했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간의 접촉을 위한 모든 시도를 악마적인 것으로 여겼다. 더 나아가 루터는 성경이 죽은 자들의 영을 언급하지 않고, 죽은 자들의 영과 소통하는 것을 금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명기 18장 10-11절과 이사야 8장 19-20절, 그리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분리를 강조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만찬에 관한 신앙고백』(1528)에서 비록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지만, 성경에 전혀 나오지도 않는 연옥은 믿을 필요가 없다고 단언했다. 1530년에 루터는 연옥을 강력히 거부했고, 그 이후 연옥이나 죽음 이후의 정화에 관해 어떤 가능성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연옥 개념을 완전히 부인함으로써 루터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 대한 교회의 관할권, 사후 영혼이 연옥에서 정화 과정을 거친다는 교리도 거부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와 미사는 물론 면벌부와 성지순례까지 죽은 자들을 위한 모든 대원(代願, suffrage)을 부인했다. 이와 함께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도움을 주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교리 및 이와 관련된 종교 행위와 의식을 제거했다. 이로써 루터는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을 도와주는 관계(예, 마리아와 성인 숭배)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전구하는 관계 둘 다를 단절시켜 놓았다. 이것은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분리했음을, 그리고 구원론에서 연옥 교리를 완전히 삭제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