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②]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만질 때 하루의 삶을 따라가며 소소한 순간에서 거룩한 일상을 누리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켜셨나요?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뱉으면서, 호흡하도록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시간을 못 가지셨다면, 지금 먼저 그 경험을 누려보세요. Harald Slott-Møller - Spring(1896) 출처 : Wikimedia 이제 자연스럽게 몸이 향하는 곳은 바로 세면실입니다. 거기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과 마주합니다. 지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기억나시면, 얼굴의 특징을 말씀해 보실래요? 어르신들 중에는 나이 들면서 생기는 눈가와 이미, 피부의 주름에 거울 보기가 싫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 평소에는 별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분주한 아침 시간이라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부분 바로 전날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문득 거울에 나타난 내 얼굴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자화상에 나타난 노년의 얼굴 네덜란드를 대표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자화상(自畵像), 스스로 자기 얼굴을 그린 화가로 유명합니다.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에는 자신의 얼굴이나 외모를 사실 그대로 그린 작품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인상(印象)을 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은 삶의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이렇게 자신의 일생을 자화상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Rembrandt - Self-Portrait at the Age of 63(1669) 출처 : Wikimedia 1669년, 죽기 몇 달 전에 그린 마지막 자화상인 <63세의 자화상>은 물감을 두껍게 발라 얼룩덜룩한 얼굴로 나이 든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비극을 넘어서는 내적인 평안을 얻은 노년의 모습이 보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무엇을 위해 살았고 또 어떻게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림을 보는 이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누구라도 이 질문에 잘한 일도 또 잘못한 일이나 후회되는 일도 떠오르겠지요. 그것들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년의 깊이가 느껴지는 자신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얼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속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천사의 얼굴’와 같다고 표현된 스데반입니다. 그는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로 세움을 받고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이적을 행했습니다. 많은 사람과 논쟁을 했음에도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며 대답했기에 누구도 그를 능히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짓증인들에 의해 목숨에 위협을 느끼며 공회에 잡혀갑니다. 성경은 그때의 모습을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합니다(사도행전 6:15).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돈을 받고 매수된 사람의 거짓 증언으로 목숨이 위협을 받고 있지만, 성난 군중에 의해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공포에 질린 얼굴도, 절망하고 포기한 얼굴도, 분노로 가득한 얼굴도 아닌, 평안과 확신으로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얼굴은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는데, 그때 스데반의 얼굴은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현재의 문제 상황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계신 더 크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바라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사의 얼굴과 같았던 스데반의 얼굴이지요. 노년에 이르고 백발이 되기까지 너를 품으리라 앞서 렘브란트의 자화상 이야기를 했는데, 얼굴을 소재로 그린 재밌는 그림이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라는 작품입니다. Tiziano Vecellio(Titian) - The Allegory of Prudence(1550-1565) 출처 : Wikimedia 이 그림은 인생의 세 시기를 세 마리의 동물 얼굴과 함께 그렸습니다. 노인, 장년, 소년의 얼굴이 그리고 그 밑으로 세 마리 동물의 머리가 등장합니다. 노인의 얼굴 밑에는 늑대의 머리 옆모습, 장년의 얼굴 밑에는 사자의 머리 앞모습, 소년의 얼굴 밑으로는 개의 머리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왜 한 캠퍼스에 세 남자의 얼굴과 세 마리 동물의 머리를 그렸을까요? 짐작하듯이 세 남자의 얼굴은 인생의 3단계인 노년기, 장년기, 소년기를 의미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지요.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간의 흐름에서 경험이 많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노년기는 늑대,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중년기는 사자, 희망과 기대에 찬 소년기는 개의 얼굴로 표현했습니다. 화가는 이렇게 그린 이유를 그림 맨 위에 라틴어로 적어 설명합니다. EX PRÆTE/RITO // PRÆSENS PRVDEN/TER AGIT // NI FVTVRA / ACTIONĒ DE/TVRPET“과거의 경험에서 배움을 얻어 현재에 지혜롭게 행동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몸은 인체(人體)로서의 기능은 물론 다양한 감정과 이성적 사고를 비롯한 정신적 활동을 합니다. 또 하나님을 갈망하고 찾기를 소망하는 영혼을 가진 몸입니다. 하지만 유한하고 취약한 인간의 몸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노쇠해집니다. 기억력과 판단력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때 노화의 과정을 더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 얼굴의 변화입니다. 여기서 노년기의 삶을 의미 있고 기쁘게 하는 심리적 적응으로 ‘육체적 초월’을 말하는 심리 상담가 스캇 펙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노년이 되면 건강문제는 점차 심각해지고 근육이 소진되면서 체력도 급격히 떨어집니다. 수없이 늘어나는 희고 가늘어진 머리카락, 늘어나는 주름 등 신체 곳곳에 노화의 징후가 나타납니다. 이때 어떤 어르신들은 건강상태와 얼굴을 비롯한 외모에 너무 신경을 쓰고 괴로워하거나 낙심합니다. 반면 이러한 염려를 초월하고 건강이 나빠짐에도 주어진 삶을 즐기는 어르신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며 여가의 대부분을 TV 시청으로 보내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꾸준히 외부 활동을 합니다.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음과 따뜻한 말, 건강한 정신활동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그는 ‘육체적 몰두’에서 ‘육체적 초월’을 통해 노화에 정서적으로 잘 적응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면대 앞에서 이를 닦으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 근심과 걱정으로 얼굴이 찡그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얼굴은 죽음 이후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과 마주했습니다. 이 얼굴은 이제까지 내 몸과 함께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고, 그리고 내 영혼과 함께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 얼굴은 잊을 수 없는 관계들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과 얼굴을 통해 기쁨과 슬픔, 감격과 아쉬움을 나누며 소통했습니다. 그래서 이 내 얼굴에는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나만의 삶이 그린 붓칠로 완성된 내 얼굴입니다. 누구의 얼굴과도 비교할 수 없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도 없습니다. 이처럼 높은 차원의 삶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삶이 변해갑니다. 보람차고 의미 있는 노년을, 행복을 맛보는 노년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하나님의 얼굴에서 사랑을 읽기 노년의 아름다움은 물론,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잠언 20:29)는 말씀처럼,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내 얼굴과 머리카락, 몸의 변화는 폄하하거나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몸과 나를 대변하는 내 얼굴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년에도 내 모습 그대로 나에게 맡기신 소명에 끝까지 순종하고 충성할 때, 그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며 가장 거룩한 순간입니다. Rembrandt - An Elderly Man in Prayer(1660) 출처 : clevelandart.org 어느 날 아침에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내 얼굴 뒤로 나를 바라보시며 환히 웃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상상해 봤습니다. 처음 거울에 내 얼굴이 보일 때는 피로에 지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보고 있기가 불편해져, 바로 고개를 숙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보며 반가워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하니, 다시 고개를 들어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하나님을 향해 환한 미소로 응답하며 시작하는 이날 아침은 참 특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쳐다볼 때, 거울에 비친 내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해 봅시다. 나를 향해 환히 웃으시는 하나님의 반가운 얼굴에 나도 진짜 미소로 응답하는 것으로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 민수기 6:2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