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⑥]차 한 잔과 함께하는 책 읽기 이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책으로 눈을 돌려 봅니다. 하루의 삶을 따라가며 소소한 순간에서 거룩한 일상을 누리는 여섯 번째 시간은 책 읽기입니다. 인간만이 가지는 물건, 책 누구나 책 한 권 이상은 가지고 있지요. 단일 품목으로 가장 종류가 많은 상품이 책이라고 합니다. 익숙한 물건인 책에 관해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책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소중한 벗, 소통, 힐링, 동반자, 비타민, 등대, 인생의 여행’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중에는 이런 감성 깊은 응답도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에 물결을 일으키는 물수제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는, 엄마가 끓여 주는 김치찌개.’ 여러분은 어떤 멋진 대답을 들려줄지 궁금해집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 책 읽는 여인(1876) 출처 : 오르세 미술관(프랑스 파리) 책은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물건입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점으로 도구 사용, 언어 구사, 감정을 표현하거나 공감하는 소통 능력이 꼽힙니다. 물론 인간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런 능력의 기초적인 수준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는 단 하나, 인간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책을 만들고, 그 책을 세대를 걸쳐서 읽고 토론하고, 다시 새로운 책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새로운 사상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로 구현됩니다. 책은 시간과 공간이 닿을 수 없는 한계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요술 방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동물 가죽이나 나무 조각, 식물의 껍질에 큰 글자로 쓴 것을 끈으로 묶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월광독서’(月光讀書, 달빛으로 책을 읽는다)라는 말은 중국 제나라 시대 강필(江泌)이라는 청년이 너무 가난해서 낮에는 나무를 깎아 나막신을 만들고 저녁에는 책을 읽었는데, 등불을 밝힐 여력도 없어 달이 뜨기만을 기다렸다가 지붕에 올라가 달빛에 비추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책 한 권에 들어가는 글자의 양이 많지 않았고 글자의 크기도 컸으니,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15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활판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글자가 작은 상당한 분량의 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18세기 말에는 산업혁명으로 제지, 인쇄, 제본 기술이 발달하면서 책의 대량 생산과 보급이 가능해집니다. 게다가 전등의 발명으로 밤에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20세기 유통혁명으로 책은 지역의 경계는 물론, 시간의 경계까지 허물었습니다. 저 멀리 외국의 책이 바로 번역되어 내 집 앞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시니어만의 독서 묘미 최근 손에 잡았던 책 제목을 기억하시나요? 사실 책보다는 TV 리모컨이나 스마트폰에 손이 먼저 갑니다. TV에서 방송되는 드라마나 뉴스, 스마트 폰으로 보는 유튜브와 카톡에 눈을 빼앗기다 보니 언제 책을 읽었나 싶습니다. 여러 일로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겨를이 없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공감할 또 하나의 이유는 눈이 침침해져서 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며 시력이 떨어져서 책의 글자를 깨끗하게 볼 수 없으니, 쉽게 피로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잠깐만 독서를 해도 졸려서 책을 손에서 놓게 됩니다. 때로 돋보기까지 챙겨야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데도 점차 멀어집니다. 중국 청나라 사람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이라는 책에서 노년의 독서를 ‘여대상완월’(如臺上玩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는 글귀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노년의 독서는 젊은 시절이나 중년의 때와 달리 누각 위에서 달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멋집니다. 인생경험이 넓어진 노년에 책을 읽는 것은 이전과는 깨닫고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말이지요. 같은 책이라도 젊었을 때와 이후에 나이 들어 다시 읽을 때의 소회가 달랐던 경험에서 이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토마스 워터맨 우드 - 성경을 읽는 노인(1874) 출처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미국 뉴욕) 『100세까지의 독서술』의 저자 쓰노 가이타로는 젊은이가 모르는 노년에 즐기는 노인만의 독서 묘미로 책상에서 천천히 읽을 수 있는 독서를 첫 번째로 꼽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수업에 필요한 책을 읽느라, 성인이 되어서는 업무와 관련된 책을 읽느라,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어 주느라 느긋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을 겨를이 없었지요. 이제 노년이 되어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오롯이 책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한 자 한 자를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생각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늘 안에 이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의무감으로 책을 읽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읽다보면 책 읽기의 재미가 반감되기도 합니다. 자칫 휙 넘겨서 자세히 읽어야 알 수 있는 깊은 의미를 놓칠 수도 있고요. 거기에 노년의 독서에는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른 인상과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이 있다고 알려 줍니다. 과거의 경험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경험의 깊이를 더할 수 있어 노년의 시기에 독서는 소중합니다. 노년기 자아통합을 위한 독서 전문가들은 건강한 노인이 지닌 공통적인 생활습관은 다름 아닌 독서였다고 말합니다. 또한 노년의 시기에 책 읽기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삶에 큰 도움을 된다면서 적극 추천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노년기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노인이 되면 사회적 활동은 감소하고 육체적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감이 높아집니다. 또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 소식에 고독감이 심화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사회·심리 발달에 따라 인생의 시기를 8단계로 나누고, 마지막 단계인 노년기의 삶의 과제를 ‘자아통합’(ego integrity)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아통합, 자아완성이라는 과제는 노년기에 나타나는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과거의 놓쳐버린 기회들을 아쉬워만 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삶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일도, 좌절과 실패의 경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인생 전체의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래도 잘 살아왔지. 최선을 다했고 아름다운 한 평생이었어’라는 시각을 가질 때 자아통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긍휼에 풍성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 자족하는 중에 자아통합을 경험합니다. 독서는 자아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덧 지난 삶을 반추하며 자신을 토닥일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인정하고, 그 때의 경험도 의미가 있었다고 재평가하며 지난 삶의 보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노년기에 겪는 신체적 증상과 감정을 공유하고,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창의적으로 노년기를 사는 이야기를 읽은 후 새로운 일이나 취미를 시작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책의 인물과 소통하는 과정은 노년기에 겪는 여러 감정을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남은 생을 가치 있는 삶으로 구성하도록 돕습니다. 몇 가지 독서 방법을 제안합니다. 1.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읽기출판평론가 쓰노 가이타로가 명나라 문인 원굉도(袁宏道)가 쓴 <독서>라는 시를 통해 제안하는 독서법인데, 단정하게 옷을 입고 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책에 적힌 글자 하나와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한 읽으려는 노년의 책읽기 자세를 보여 줍니다. 2. 공공도서관에 회원 가입하기공공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회원가입을 하면 책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3. 기억에 남는 책 다시 읽기베스트셀러도 좋지만, 반복해서 읽기와 기억에 남는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유익합니다. 때로 읽었다는 것을 잊고 또 읽을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4. 책장 정리하기와 책 읽는 장소 만들기책은 일반 가재도구에 비해 오랫동안 소장하지만 좀처럼 버리지 않습니다. 당장 버릴 책, 다음에 버릴 책,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을 책으로 나누어 1년 정도 느긋하게 정리해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독서 장소를 마련해보는 것도 시니어 독서의 묘미입니다. 5. 읽은 내용 함께 나누기마음이 맞는 두세 사람과 독서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현명한 독서가는 선배나 후배 또는 가족과 함께 읽은 것을 나누면서 이차적인 독서를 합니다. 이때 책 한 권을 정해서 돌아가며 윤독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러면 한 권 두 권, 책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읽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아야 할 책, 성경 “감옥에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한 후에야 비로소 성경 안에 이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보물을 찾아다녔는데 말이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John Bunyan)의 고백입니다. 그는 청교도 신앙으로 영국국교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많은 핍박을 받고, 12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는 동안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천로역정』을 집필하는데, 투옥되었던 베드포드 형무소에서 성경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 - 독서하는 노부인(1631) 출처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네덜란드)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성경책을 읽는 것입니다. 모든 책 중에서도 가장 귀한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시작과 끝, 그리고 어느 책도 알려주지 못하는 죽음 이후를 가르치고 준비하게 하는 유일한 책이니까요.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신실한 그리스도인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임종을 앞두고 비서에게 책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수천 권의 책이 있어서 비서가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 거냐고 물었을 때, 스콧 박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요. “성경이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성경 말고 무슨 책이 소용 있겠나!” 차와 함께 책을 펼쳐보실까요. 책을 쓴 저자나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나 나눌 이야기, 익숙하거나 또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 경험할 일을 상상해봅시다. 여기서 한 가지, 그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으며 내 목소리에 실려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보는 경험을 추천합니다. 나를 사랑하신다고 수없이 쓰여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미소를 머금으며 하루를 맞이해 보세요.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디모데후서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