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⑦] 집을 나서며 만나는 사람들과 소소한 하루에서 거룩한 일상을 누리는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으로 호흡하고, 세면대 거울에서 하나님의 따뜻한 시선을 발견하고, 선물로 주신 몸을 돌보며 운동과 식사를 했습니다. 청소와 정리를 마치고, 잠시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여유도 가졌습니다. 이렇게 오전에 집에서 할 일들을 챙겼으니, 이제 집 밖으로 나서봅니다. 옷을 조금 신경 써서 입으셨다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겠지요. 혹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다면, 분명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는 날일 겁니다. 요즘 날씨가 추우니 옷을 단단히 입고 외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얼굴 한 번 보자” 사람들은 “얼굴 한번 보자,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자주 하지요. 오랜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쉽게 건네는 말입니다. 실제로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인사치레로 그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람들은 기회가 닿는다면 영향력 있고 유명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만남이 찾아오면, 삶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내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그가 제시해 주리라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런 만남이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지는 않습니다. 삶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과 꼭 필요한 위로와 격려는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더 의미 있는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경험을 나누는, 가까이 있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날도 언젠가는 오겠지요. 오늘이 그의 얼굴을 보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렘브란트 -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1642) 출처 : 에르미타주 박물관(러시아) 소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니, 구약성경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이스라엘 왕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그를 숨겨 주며 도왔습니다. 겉옷을 벗어 주고,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다 주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들에서 만났을 때 요나단은 아버지가 다윗을 해치려 할 때 알려 주겠다고 약속하고,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요나단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 같이 다윗을 사랑했고, 둘은 언약을 맺습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사무엘상 20:14-15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며, 생명을 함께하는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이 약속은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요나단과 사울 왕이 죽고, 다섯 살이었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만 므비보셋을 땅에 떨어트렸고, 이 사고로 그는 다리를 절게 됩니다. 이후 므비보셋은 광야 들판의 빈민촌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다윗의 신하가 찾아와 다윗이 있는 왕궁으로 데려갑니다. 당시 새로 권력을 잡은 왕은 이전 왕의 가족은 물론 연관된 모든 사람을 죽였기에,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신을 찾아 죽이려는 것으로 생각해 두려워하며 다윗 앞에 엎드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요나단이 죽었으니, 아버지와 다윗 사이의 깊은 우정을 알지 못했겠지요. 다윗이 므비보셋을 찾은 이유는 서로 지켜 주겠다는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사람은 왕궁에 들이지 않던 관행을 깨고 다리를 쩔뚝거리는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부릅니다. 또한 항상 자신과 식사 자리를 같이하게 합니다. 단순히 밥 한번 같이 먹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킨 친구 다윗이 있어 그의 아들이 이런 은총을 누립니다. 우연한 만남이 주는 선물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대문 밖에만 나가도 골목에서, 또 가게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이웃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아이들은 같이 뛰놀고, 어른들은 길에 서서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린아이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삶을 공유했습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집 아이를 돌봐 주었기에, 아이들에게는 수많은 이모와 삼촌. 그리고 부모와 조부모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늦게 오는 날이면 이웃집에서 밥을 먹어도 어색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겠지요. 집 앞이나 동네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나 고함치는 소리, 어른들이 가던 길에 멈춰 서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먼저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손주를 만나려고 해도 학원 일정을 피해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계획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집만 나서면 어른들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던 때와 달리, 이제는 다른 세대와의 만남이 점점 낯설기만 합니다. 정채봉 시인의 글 <만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장프랑수아 밀레 - 기다림(1853-1861) 출처 : 넬슨-앳킨스 미술관(미국 캔자스 시티) 모두가 손수건 같은 만남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에게 손수건과 같은 존재인지 묻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여러모로 따집니다. 우연이라도 멋진 사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를 만날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일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누군가를 만나는 데는 관심이 크지만, 내가 훌륭한 사람일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먼저 따져봐야겠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이든지, 또는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든지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좋은 만남을 위해 생각할 것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언 25:11 좋은 만남을 위해서는 말이 중요합니다. 다른 세대와의 만남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 많은 사람이든, 말하는 습관과 태도 때문에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입견을 갖고 쉽게 상대방의 외모나 의견을 비난하거나, 내 실수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대표적이지요. 반면에 진심으로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야” 하며 긍정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만하길 다행이야” 하며 상대방의 상황에 공감하는 말하기 습관은 좋은 만남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공연히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본심을 숨기기 위해 돌려 말하기보다는, 쉬운 말로 배려하는 솔직한 말하기가 중요합니다. 말하기와 함께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얼굴 표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 멋진 말을 한다고 해도 표정과 어울리지 않으면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얼굴에는 40여 개의 근육이 분포되어 있어 미묘한 감정들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코로나시기에 마스크를 쓰면서 경험했듯이, 입이나 얼굴을 가리면 마음을 읽을 수 없어 온전한 대화가 어렵습니다. 얼굴은 호흡과 음식물 섭취와 같은 생리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의사소통과 같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입과 귀로 말을 주고받고, 눈빛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것으로 의사를 전달합니다. 기쁨, 반가움, 감사를 담은 얼굴로 이야기한다면, 더욱 즐거운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얼굴에 담은 미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일을 할 때도 미소는 매우 중요합니다. 임상심리학 이민규 박사는 『행복도 선택이다』에서 미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미소에는 세 가지 메시지, 첫째는 ‘만나서 반갑습니다’, 둘째는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셋째는 ‘우리는 한편입니다’가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호감과 공감을 전하는 통로가 바로 미소라는 말입니다.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미소 짓게 되는데,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말로는 반갑다고 하면서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미소 짓지 말아야 할 상황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소는 시기적절성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적절한 유모가 있다면 즐거운 만남에 금상첨화겠지요. 인생에서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 교회 어르신에게서 스마트에 저장된 친구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0세가 훌쩍 넘으신 지금, 주변 어른들뿐 아니라 오랜 친구들, 때로는 후배들의 부고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는 경험을 하신 것입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던 친구들 모임에 하나둘씩 빠지는 친구가 생긴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프거나, 먼저 세상을 떠나서라는 설명을 들으니 누군가와의 만남이 영원할 수 없음을 다시금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아는 사람이 한 사람씩 줄어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소중하고, 오늘의 만남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 오래된 집에서(1919-1922), 출처: 스웨덴 국립박물관(스톡홀름) 시간을 설명할 때 흔히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을 말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으로 1초, 1분, 1년과 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반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의미의 시간을 뜻합니다. 특별한 경험의 시간,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는 시간,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그때 만나는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때로는 인생에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시간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그때도 나와 함께한 누군가를 통해 길을 여시고, 내 인격을 빚으시며 성숙한 삶을 이루어가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오늘이 소중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고 싶고, 그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가요? 아직 누군가와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나,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시나요? 감사를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바로 서둘러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꼭 만나야 할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지금 전화해 보세요. 그리고 바로 집을 나서 그 사람을 만나 따뜻한 미소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