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⑪

[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⑪]장례식장을 다녀오는 길에 해가 지날수록 부고(訃告)를 받는 일이 늘어납니다. 주로 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지만, 가끔은 친구나 후배의 부고도 듣습니다. 특히 당황스러운 경우는 조만간 만나려고 했던 사람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일입니다. 이런 날은 유난히 여러 상념에 잠기곤 합니다. 자주 만나던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은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평소에 하지 않던 삶과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소소한 하루에서 거룩한 일상을 누리는 경험을 나누고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오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의 장례식 풍경 오늘날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획일화되듯이, 장례식장도 1호실, 2호실, 특실로 이름 붙여져 획일적인 구조로 운영됩니다. 좁은 복도마다 근조 화환이 늘어서고 유가족과 조문객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데, 차이가 나는 것은 개별 상가(商家)의 크기와 거기에 딸린 휴게실의 구조뿐입니다. 어느 지역에서든지, 누구의 장례든지 다 비슷해졌는데 비슷한 모양의 조문단과 표준화된 장례식장에서 정신 줄을 놓으면 엉뚱한 곳으로 조문하러 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고인의 성함이나 호실을 잘 살피지 않으면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니까요.장례식장에는 슬픔에 오열하는 모습부터 몸과 마음이 지쳐서 나타나는 무표정까지 다양한 모습이 교차합니다. 때로는 여러 조문객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어수선함도 느낍니다. 안나 앙케, <장례식>(1891년) 출처: Wikimedia Commons tvN 방송에서 방영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마지막 회에는 주인공 감리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이 나옵니다. 이 드라마는 공진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장례식은 감리 할머니가 살던 집에서 치러집니다. 그때 마당 한 쪽에는 할머니의 생전 모습,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찍힌 사진 여러 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전에 마을 결혼식에서 포토 테이블을 보며 자신의 장례식에 이런 것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 대로 마련된 것입니다. 조문 온 사람들은 사진 속 할머니를 보며 이전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그리고 장례식이 진행되는 집 마당에는 사람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감리 할머니가 앞으로 남은 가장 성대한 잔치가 장례식일 텐데, 자신의 장례식에는 감자 전이나 부쳐먹고 막걸리나 실컷 마시라고 했던 말 그대로 준비한 것입니다. 할머니의 소원대로 공진 마을 사람들은 감리 할머니의 장례식을 떠들썩하게 보내며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할머니의 집과 마을 곳곳에 남겨진 할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나름의 애도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죽음을 맞고 싶어서 인간의 근심과 염려 중에 제일 큰 것을 꼽자면, 단연 죽음입니다. 죽음의 불안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충전 중인 자동차에서 일어난 화재, 예상치 못한 폭염과 한파, 마을을 집어삼킬 기세의 대형 산불, 갑작스러운 땅 꺼짐까지 사건과 사고가 많은 시대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 우리를 위협합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히 죽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 되었습니다. 9988124,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하루나 이틀(12) 앓고, 죽었으면(4) 좋겠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잘 사는 것 뿐만 아니라, 잘 죽는 것에 주목하면서 국가별로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을 평가해서 순위를 매기기도 합니다. 프란시스 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872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첫째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죽음, 둘째 천수를 누리는 죽음, 셋째 내 집에서 맞이하는 죽음, 넷째 편안한 모습으로의 죽음, 다섯째 준비된 죽음, 여섯째 원하는 삶을 누리다 가는 죽음입니다. 대체로 죽을 때 집에서, 사람들의 돌봄 가운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좋은 죽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좋은 죽음’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해보면 그것을 알게 되는데, 사실 예수님의 죽음은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죽음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지요. 좋은 죽음에서 모두 빗나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에게 좋은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시기에 감염과 죽음을 무릅쓰고 병든 사람을 돌보며, 전장에서 죽은 사람을 챙겼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받던 시기에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고백하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위협과 고통스러운 고문에도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이전에는 편안한 죽음을 원했다 하여도,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충성하기 위해 고통당하는 중에도 기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소망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그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도가 더욱 깊어져야 하는 이유도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놓는 ‘자찬묘비명’(自撰墓碑銘) 또는 ‘자명’(自銘)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묘비명은 고인의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지인이 고인을 생각하며 기록합니다. 그런데 자찬묘비명은 건강할 때 직접 쓰는 것으로, 지난 삶을 돌아보며 소회를 남기거나 앞으로 맞이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선비로서의 삶을 다짐하기 위해 기록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 『두 도시의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등 유명 작품을 쓴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는 자녀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라는 책도 썼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런던 타임즈>에 그의 생전 인터뷰가 실렸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집니다. “나는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신약의 가르침을 받아 겸손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원하고 당부합니다.” 자녀에게 남긴 이 신앙 고백은 바울 사도가 순교를 앞두고 초대교회 교인들과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겼던 유언과도 동일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신앙의 유산에 대해 생각하기 언젠가 장례식장을 다녀오는 길에 불현듯 저곳의 주인공이 내가 될 날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은 해도, 실제 내 마음과 몸은 죽음에 대해 불편해하고 거부감을 가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과 후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요. 그리고 지난 삶과 죽음의 순간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귀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장례식>(1849-50년)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내가 남긴 삶의 흔적을 내가 고치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시 살아나 정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더욱 오늘의 삶에 신중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은 생의 마지막을 그려보며,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잠시 했습니다. 단지 평안히 눈을 감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설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영정사진으로 사람들을 맞이할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에게 맡겨진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감사한 순간, 그리고 지켜야 할 믿음을 생각합니다. 매 순간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죽음을 넘어서는 거룩한 일상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요한복음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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