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1837년-1899년)>죽음이 가까웠을 때 하나님 만날 날을 사모한 복음 전도자 “오늘은 내가 면류관을 쓰는 날이야. 참으로 영광스러운 날이지.” 전도자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 1837년-1899년)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남긴 말은 “오늘은 내가 면류관을 쓰는 날이야. 참으로 영광스러운 날이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림-<드와이트 라이먼 무디>, 1900년) “당신은 어느 날 신문에서 이스트 노스필드 태생의 D. L.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현재의 나보다 더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낡은 육체를 벗어나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니, 죽음이 침노할 수 없으며 죄가 더럽힐 수 없는 몸,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육신으로는 1837년에 태어났고 영적으로는 1855년에 태어났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죽지만 영으로 태어난 것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피트(A. P. Fitt), The Life of D. L. Moody, 서종대 역, 『무디의 생애』(생명의말씀사, 2002년), 9쪽. 천국을 소망하는 삶무디는 63세에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무려 100만 명 이상을 전도한 세계적인 전도자입니다. 무디가 1899년 12월 22일 죽음을 앞둔 순간, 잠깐 잠든 사이에 천국의 영광을 보고는 깨어나 자녀들에게 “땅은 멀어지고 천국 문이 내 앞에 열리는구나.”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고향 노스필드(Northfield) 자택에서 임종하던 날, 사위 피트(A. P. Fitt)와 아들 윌 무디가 간호했는데 무디는 잠들어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의사가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 피하 주사를 놓으려 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맞는지 물으며 오히려 가족들에게 더 큰 근심만 안겨줄 것이라고 말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문을 통과해 천국 문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자신을 위한 대관식이 베풀어진 것을 보았다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잡은 중에 이런 말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여보, 이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오. 잠시 동안 당신과 헤어지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너무 염려 말고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시오.”- 무디(William R. Moody), The Life of D. L. Moody, 김한기 역, 『위대한 전도자 무디』(은혜, 1993년), 174쪽. (그림-윌버 채프만, <드와이트 무디의 장례식>, 1900년) 무디의 무덤 비석에 기록된 성경말씀은 요한일서 2장 17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하느니라”입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요한일서 2:15~17 -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또 다른 생일세계적 부흥사이며 전도자였던 무디는 1837년 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이스트 노스필드(East Northfield)에서 벽돌공의 일곱 자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무디가 4세 때 아버지 에드윈 무디(Edwin Moody)가 공사장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파산한 채 죽고 주변에 생계를 의지할 사람이 없어 무디는 13세에 학교교육을 중단합니다. 무디는 17세 때 보스턴에서 구두 가게를 운영하는 외삼촌 새뮤얼 밑에서 일합니다. 그 시기에 교회학교 선생인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을 만나며 회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시카고로 가서 구두 세일즈맨으로 성공하지만, 1857년부터는 신앙부흥운동에 열중하며 YMCA(기독교청년회) 회장 역할을 맡습니다. 이 때 어린이와 함께 한 주일학교 사역은 1864년 무디가 목사로 사역한 일리노이즈 스트리트교회(Illinois Street Church)를 설립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 인구의 3분의 1인 10만 명이 집을 잃은 대화재에서 무디의 집과 교회 그리고 YMCA 회관인 파월 홀(Powell Hall)이 전소됩니다. 그럼에도 그해 영국 방문을 시작으로 1873년에는 2년여에 걸쳐서 영국 곳곳에서 복음성가 가수인 아이라 생키(Ira Sankey)와 함께 전도사역을 펼칩니다. 1886년 시카고에 대형 텐트를 치고 개인 전도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대화재로 전소된 교회를 대신해 새로 지은 애비뉴 교회에서 ‘시카고 성경연구원’ 정규 성경공부반을 만듭니다. 이 사역은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박사의 참여로 ‘무디 성경학교’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후에 토레이 박사는 애비뉴 교회를 맡습니다. 비록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충분히 거치진 못했지만, 오히려 부족한 사람을 들어 더욱 귀하게 쓰시는 하나님은 그의 삶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후에 누군가가 어떻게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고 또 잘 섬길 수 있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자세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싶다면 하나님을 아주 잘 알고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전광, 『성경 읽고 위대한 영웅이 되라』(두란노, 2004년), 48-49쪽. 목숨을 다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무디의 생애 중에서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의 부흥회를 마치고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우스햄튼에서 출항하여 뉴욕으로 가는 스프리(Spree)호에 탑승 했습니다. 출항하고 사흘째 되는 날, 선실에서 시카고 만국박람회 집회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엄청난 충돌 소리와 함께 배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돛이 부러져 배가 부서지면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근처를 지나는 배도 없어 7백여 명의 승객은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림-윌버 채프만, <런던 대형 오페라 하우스에서 설교하는 무디>, 1900년) 무디는 평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죽음을 주제로 종종 설교하면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대해 승리함을 전했습니다. 남북 전쟁 당시에 총알이 빗발치는 죽음의 사선(死線)을 넘나들었습니다. 또한 시카고에 콜레라가 기승을 부렸을 때에는 의사들과 함께 병자와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며 죽음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침몰하는 선상(船上)에서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순간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집에 있는 아내와 자녀, 미국과 영국에 있는 친구와 모든 소중한 것들에 생각이 미치고 이 모든 것들로부터 영원히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공포가 몰려오며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무디는 기도했고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중에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잠시 눈을 붙입니다. 결국 사고가 나고 7일 만에 레이크 휴런(Lake Huron) 호의 도움으로 살게 됩니다. 그는 그 때의 경험을 통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리이다’, 내가 이 기도를 한 순간 놀라운 평화가 가슴에 밀려왔다. 이제는 ‘노스필드나 천국’ 중 그 어느 장소에 놓이든 상관이 없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가서 즉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내 평생 그렇게 단잠을 자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영혼 깊은 곳에서 주님께 부르짖었으며, 주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신 것이다.”- 피트(A. P. Fitt), The Life of D. L. Moody, 서종대 역, 『무디의 생애』(생명의말씀사, 2002년), 148쪽.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성령의 돌보심으로 평안을 경험했던 무디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의 영광과 면류관을 바라보는 중에 평안히 생을 마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