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전통종교와 한국그리스도인의 죽음 이해 한국 사회는 세계 종교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러 종교들이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다종교사회입니다. 유사 이래 무교가 한국인들의 심성에 깊이 뿌리 내렸고, 불교, 유교, 도교 등이 전래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특한 한국적 종교 심성을 형성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죽음 이해 역시 자연스럽게 유교, 불교, 무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교는 죽음을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여기며,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현세의 삶에 충실할 것을 교훈합니다. 불교는 삶과 죽음이 모두 허상임을 깨달으면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여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도교는 삶과 죽음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이러한 여러 종교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서로 혼합되면서 현세를 중시하지만 사후세계와 윤회전생도 믿는 태도를 낳게 하였고, 오늘날 한국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죽음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 역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셨고 실제로 보여주신 죽음에 대한 내용은 한국인들에게는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성경 속의 낯선 신세계” (칼 바르트)였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전의 종교들이 가르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의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그리스도인들의 의식과 심성 깊은 곳에는 전통종교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의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그것이 알게 모르게 사고와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치면서 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교회 출석한지가 오래 된 신도들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생각을 하고, 또 그러한 기도를 드리게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식 장례라고 해도 비성경적인 부분들이 있고, 여전히 그 가운데 무교, 유교, 불교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례 절차를 보면 수의를 입히고, 몸을 끈으로 묶으며, 꽃신을 신기는 것이 있습니다. 또 조문을 할 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불교, 무교, 유교 문화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상세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장례에 대한 전통과 관습은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장례예식서가 교단별로 나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반적 전통과 관습에 근거해 있는 실정입니다. 기독교 상조회사들도 있지만 사실상 같은 용어와 용품을 사용하고 그들이 진행하는 절차도 일반 장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통과 문화를 따라 행해지는 장례용어와 장례용품, 예식의 절차나 장식등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새로 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장례예식’대신 ‘천국환송예식’으로 부르고, “돌아가셨습니다”, “소천하셨습니다‘ 대신 ”하늘/천국시민이 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등이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겠습니다. 친밀한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고통스럽고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는 종교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것입니다. 죽음이 삶의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대부분의 종교가 말하고 있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삶과 죽음은 아주 특별하고 분명한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성경에 근거하여 사고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통의식을 따라가다 보니 믿음이 흔들리고 왜곡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 심성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종교와 문화의 핵심적인 사고체계 (‘집단 무의식’) 가운데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를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종교를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또한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지를 표현하는 것이 문화라면, 인간이 문화 속에서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근본적 방법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즉, 종교는 문화 현상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의 실질적인 기초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전통문화 안에서 표현되어 온 실질적 기초로서의 주요 종교는 무교, 불교, 유교이며, 이러한 종교들이 한국 문화의 실체로 나타나고, 한국 문화는 이러한 여러 종교들의 형태인 것을 보게 됩니다. 종교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문화의 실체인 무교, 불교, 유교의 죽음 이해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무교, 불교, 유교문화권에 살아온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특히 우리 문화와 종교 가운데 체화되었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바뀌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인지, 몇 차례에 나누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한국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더 확고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성경적 죽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