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의 죽음 설교 ⑤시편 73편 1953년 가을에 로이드 존스는 다시 고난과 죽음의 신학적 의미를 신자들에게 설교하고자 시 73편을 선택했다. 처음 로이드 존스는 1953년 7월 19일에 요한복음 17장을 강해 설교하고 난 뒤, 에베소서 강해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뇌리 속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5)’라는 시편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로이드 존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씀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드렸다. 물론, 그는 1952년 요 14장을 중심으로 죽음 설교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재차 영적 침체에 빠진 웨스트민스터 채플 공동체에게 고난과 죽음에 관한 설교를 요구하신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그는 설교 스케줄을 변경시켜 시 73편을 11회에 걸려 강해 설교한다.49) 그렇다면 그 당시 로이드 존스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성도들에게 왜 시편 73편의 아삽의 신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까? 바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라는 악인이 왜 선량한 신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에 관한 분명한 대답을 재차 할 필요가 있었다. 즉,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8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런던 시민들과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성도들은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의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50)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는 2차 세계대전의 고난과 죽음을 경험한 자들에게 참된 위로를 가르치고자 시 73편을 선택했다고 고백한다. 시 73편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자주 당혹하게 하고 낙담케 하는 난제[죽음 포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난제를 이중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어째서 경건한 자들이 빈번히 고난[과 순교]를 받아야 하는가? 경건치 않은 악인들이 아주 잘 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사실을 비추어볼 때에 말입니다.... 시편 기자[아삽]는 자기의 체험을 진술하고 자기 영혼을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자들이] 한 단계 한 단계 거의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즈음으로부터 궁극적인 승리와 확신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밝혀 나갑니다.51) 그리고 로이드 존스는 시 73편의 죽음 설교가 신자들에게 참된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목회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고 설명한다. 매 주일 오전에 이 부요한 가르침을 연속 강해한 설교들을 준비하고 전하는 일이 제게 있어서 사랑과 참된 기쁨이 깃든 수고였습니다. 이 연속 강해 설교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하의 설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영혼의 큰 고뇌에 빠져 거의 자지러질 즈음에 있는 사람을 즉시 소송케 하시고 큰 기쁨을 갖게 하여 주셨습니다.52) 그러면, 시편 73편 강해 설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우선, 로이드 존스의 시편 73편 강해 설교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본다면, 첫 부분에 해당하는 1-2번째 설교까지는 죽음을 광불케하는 시련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초 중반까지의 설교 내용은 ‘고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 ‘고난은 영광으로 가는 과정’과 ‘악인의 최후’에 관해 논한다.53) 로이드 존스는 시편 73편 강해 설교 첫 부분을 통해 신자들에게 “악인이 의인을 죽였으나 의인의 영혼을 죽일 수 없기에, 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기쁘게 받을 것”54)을 요구한다. 둘째 부분에 해당되는 3-7번째 설교에서 로이드 존스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기를 원한다. 사실, 로이드 존스는 두 번째 부분인 시편 73:17-22절을 설교하면서 ‘성소’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인 아삽이 성소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무지와 인생 종말의 종착점, 그리고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성소’의 수단적인 개념을 개신교적 관점에서 말씀과 기도로 적용시킨다. 즉, 그는 웨스트민스터 채플 성도들에게 고난과 죽음 앞에 놓여 있을 경우에,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신뢰하기를 원했다.55) 마지막 셋째 부분인 8-11번째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앞선 3-7번째 설교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시련과 고난을 이기는 원동력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데 있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는 셋째 부분의 첫 시작인 8번째 설교에서 시 73:23절의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아삽)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수난이 나타난 세상의 모순을 바라보며 한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도성을 향한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로이드 존스는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에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신자는 죄된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부터 죽음 뒤에 존재하는 천국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56) 또한 로이드 존스는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다가오는 죽음을 영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신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부활 후에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57) 이런 점에서, 로이드 존스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에, 죽음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로이드 존스는 50년 이상 동안 로버트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이 만든 성경읽기표를 따라 매일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가 죽기 하루 전에 맥체인 성경읽기표를 따라 읽은 마지막 성경은 바로, 고전 15장 부활장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둔 로이드 존스는 딸 옆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하고 고백하였다.58)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고, 곧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며 복된 땅으로 들어갔다. 49) Murray, 『로이드 존스 평전 3』, 442.50) Lloyd-Jones, 『믿음의 시련』, 154.51) Lloyd-Jones, 『믿음의 시련』, 9.52) Lloyd-Jones, 『믿음의 시련』, 9.53) Lloyd-Jones, 『믿음의 시련』, 11-43.54) Lloyd-Jones,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102.55) Lloyd-Jones, 『믿음의 시련』, 45-133.56) Lloyd-Jones, 『믿음의 시련』, 135-155.57) Lloyd-Jones, 『믿음의 시련』, 166, 178.58) Murray, 『로이드 존스 평전 3』, 54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