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의·식·주 이야기 ①] 수의(壽衣), 스스로는 입을 수 없는 옷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구성하는 일상은 의(衣), 식(食), 주(住)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인데, 이것들은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의식주의 경험은 개인의 삶을 구성하고, 그러한 개인의 경험이 모여 사회적인 경향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속한 사회의 가치와 태도 그리고 문화가 반영됩니다.여기서 삶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인 죽음이라는 열쇠로 삶의 문을 열어보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즉 삶의 마지막 의, 식, 주로써 말입니다. 좀 낯설지요. 물론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죽음의 측면에서 의, 식, 주를 살펴보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여기서 ‘식’은 ‘식’(食)을 포함한 의식을 가리키는 ‘식’(式)으로 넓게 사용합니다). 삶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깁니다. 지금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되고 그리고 좀 더 성숙한 삶을 위한 안목을 얻게 됩니다. 삶의 마지막에 입는 옷인 ‘수의’(壽衣). 이 옷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에서 정말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What)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또 삶의 마지막 의식인 ‘장례식’(葬禮式)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족구성과 가족 간의 관계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의 마지막 의식인 장례식에서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여기서 어떻게(How) 살아야 할지를 숙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집인 ‘묘지’(墓地)가 있습니다. 누구나 머물게 될 곳이지요. 태어남과 죽음, 삶의 시작과 끝에서 인생의 이유(Why)와 가치를 성찰하는 기회와 만납니다.이러한 삶의 마지막 의·식·주는 개인만 아니라 사회를 이해하는데도 정말 중요합니다. 화장(火葬) 문화의 확산, 병원장례식장과 상조회사의 활성화, 1인 가구의 증가와 고령사회의 도래,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명연장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장지의 선호라는 현대의 삶의 방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측면에서 삶을 들여다보면,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던 삶의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들어나 개인과 사회의 의식과 태도를 성찰적으로 돌아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전망을 얻게 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옷(衣), 세상에서의 주어진 생을 다 마치고 떠나는 날에 입는 옷인 ‘수의’(壽衣)입니다.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에 옷을 입히는 염습(殮襲)을 위해 준비하는 옷입니다. 세상에서 처음 입던 배냇저고리처럼 몸을 감싸는 단순한 형태인 이 옷은 일반적으로 염색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단추나 액세서리, 주머니가 없습니다. 또 입히기 수월하도록 크기가 넉넉합니다. 언제 입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입을 옷이기에 지금 당장 입지 않더라도 미리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 처음 태어나 입는 옷과 마지막에 입는 옷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림-남성용 수의, 국립민속박물관] 이 수의를 윤달에 마련하면 병치레 없이 장수한다는 옛말이 있어 과거 어르신들은 종종 직접 준비하거나, 자녀들이 준비하곤 했습니다. 고구려 풍습에서는 신랑 집과 신부 집이 혼례물품으로 서로 주고받은 것이 수의였다고 합니다. 양가 집안이 혼인을 결정하면 신랑 집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을 신부 집으로 보냈는데, 만약 재물을 보내면 딸을 사겠다는 의미가 되어 신부 집에서는 절대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수의는 전쟁이 잦아 언제 죽을지 몰라 미리 준비해두는 의미도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함께 하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작성한 보고서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2008년부터 매 4년마다 실시하는 조사보고서입니다. 노인의 삶 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조사를 위한 여러 질문들 중, “자신의 죽음을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에서 ‘수의’에 대한 응답이 8.3%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위한 준비와 관련해서 제일 많은 응답은 ‘묘지’로 25.1%, 다음이 ‘상조회 가입’으로 13.7%였습니다. 수의가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나왔는데, 그 외에 ‘유서 작성’이 0.5% 그리고 ‘죽음 준비 교육 수강’이 0.4%로 나타났습니다. 노인의 경우 높은 비율은 아니어도 자신의 죽음을 위한 준비에 있어 수의를 꼽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의의 특징 중 하나는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옷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옷들 중에도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옷이 있지만, 누구나 입으면서도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옷은 바로 수의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입혀라 저렇게 입혀라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입혀줄 것이라 기대해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존경의 태도로 다 큰 어른의 옷을 입혀야 하는 이 고단하고 조심스러운 과정을 누군가 잘 감당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맡길 뿐입니다.또 하나의 특징은 주머니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생 주머니가 많은 옷을 찾아왔지만, 수의를 선택할 때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주머니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넣을 것도, 특별히 간직할 것도 또 해야 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홀가분한 그런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수의는 삶이란 나의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우는 것임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죽음을 생각함으로 삶의 보다 중요한 것에 마음을 두게 하는 기회를 줍니다. [그림-수의물목(壽衣物目), 수의 물품과 수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예전에는 수의를 가족이나 친지들이 집안에 모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해방 이후 1960년경부터는 한복맞춤점이나 포목점에서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경부터는 기성품으로 제작되면서 장의업체에 공급하는 소규모 업체가 생겨났고, 1990년부터는 영안실이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수의를 공급하는 대형 제조업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최근에는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경우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여러 업체의 가격을 비교하고 이용하신 분들이 기록한 상품에 대한 평가 글을 보면서 말이지요. 여느 물건을 주문하고 구입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수의도 매장용과 화장용 수의를 구분하여 따로 제작합니다. 또 환경에 대한 관심 속에 옥수수섬유로 만든 수의, 버섯 포자를 이용한 수의 등 친환경수의도 등장했습니다. [그림-남자수의 수의도포, 국립민속박물관] 삶의 마지막 옷인 수의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오늘날 많이 변했습니다. 수의 자체만 아니라, 수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까지도 말이지요. 재료나 모양에서 주로 삼베를 가지고 일률적인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 점차 평상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굳이 수의라는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숨 쉬던 그 때의 옷을 입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화장(火葬) 문화입니다.화장의 보편화는 근현대 장례문화에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시신을 모실 관(棺)도 화로에 들어가 재로 변할 것을 알기에 두께가 얇고 모양은 단순화되었습니다. 화려한 고가의 관을 선호하던 풍조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장을 마친 골분을 담을 유골함(遺骨函)이라는 새로운 용품이 등장했습니다. 유골함은 모시는 장소에 따라 만드는 재로가 달라집니다. 봉안시설에 모시는 경우에는 도자기로 만든 것을, 자연장으로 나무나 화초 주변에 묻는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유골함을 사용합니다. 시신을 관에 모시고 땅에 묻던 매장이 일반적이던 때와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달라졌습니다. 일상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하던 일들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건강을 잃는 경우이지요. 누군가 옆에서 먹는 것, 입는 것 등 다 돌봐주어야 하는데, 이 때 참 많은 것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고 소화하며 잠잘 수 있는 것 등의 기초대사가 이루어진다는 것, 손과 발을 움직이며 기본적인 일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삶의 마지막 옷인 수의는 인간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 주변의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성장하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그것을 깨닫습니다. 또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고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지요. 사랑의 가치와 능력을 발견하는 것도 그 순간입니다.그래서 내가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고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면 정말 인생을 모르는 것입니다. 수의를 생각할 때 인간의 유한성을 다시금 인식합니다. 삶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영속될 수 있고 멋지게 매듭 지워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