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의·식·주 이야기 ③]묘지(墓地), 삶을 성찰하는 공간 일상의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집입니다. ‘역세권’, ‘숲세권’ 등 주변 환경에 따른 선호도가 있고, 코로나19 시대에는 업무를 보는 사무공간도 되지만, 역시 집에 있어 중요한 역할은 휴식과 수면입니다. 잠은 식사와 운동과 함께 건강의 핵심 기둥, 그 이상으로 건강의 토대가 됩니다.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잠을 자면서 보내기에,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곳도 집이니, 의식주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 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삶의 마지막에 잠드는 곳, 마지막 집은 ‘묘지’(墓地)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장지’(葬地)라고도 하는데, 물론 잠깐 잠들다 다시 깨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영원히 잠드는 곳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부모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앞에서 이미 고인이신 부모님에게 말을 건네거나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어냅니다. 아무 말 없이 주저앉아 한참을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어 삶의 문제에 직면하고 그리고 해결을 경험합니다.이처럼 집이 건물로서의 의미 이상을 담고 있듯이, 묘지도 단지 시신이나 유골을 매장하는 장소의 의미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지거나 느낄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신경을 씁니다. 누구라도 고인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좀 더 주변 환경이 좋고 넓은 곳에 매장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여러 기념물도 세웠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며, 부모 또는 자녀이기에 그런 마음이겠지요. 문화인류학적으로 무덤을 만드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이나 시신이 끼칠지 모르는 해로운 영향을 막겠다는 심리적이면서 동시에 위생적인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묘지는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은 현세의 권력을 내세에서도 그대로 유지할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림-진시황릉 지하 갱도의 병마용] 그리고 무덤은 고인을 기억함으로 죽은 이후에도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된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이런 이유만 아니라, 동시에 후손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심리도 작용합니다.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명당’(明堂)에 묘지를 쓰면 자손이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는 오래된 믿음의 영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묘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풍수지리로 봤을 때 잘 맞는 곳보다는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이 용이하며 집과 가까운 곳을 선호합니다. 묘지로 성묘하러 가는 명절에 복잡한 도로에서 고생할 일이 부담스럽고, 매번 벌초 등 살펴야 할 일들이 번거로운 이유에서지요.또 매장보다 화장이 월등이 많아지고 보편화되면서 봉안당이나 자연장을 선호합니다. 크고 다양한 석상을 세운 무덤보다는 봉안당과 같은 화장한 골분을 모아 둔 유골함을 모시기에 좋을 데를 찾습니다. 당연히 잠시 쉴 수 있고 식사나 모임을 할 수 있는 부대시설을 갖추었는지도 살피게 됩니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공간, 다양한 일상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선택을 받습니다. 달라진 삶의 마지막 집에 대한 선택 기준입입니다. 2015년 10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의뢰해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장례문화 및 장사제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보고서는 매장을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 ‘묘지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가 38.1%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서 ‘전통적 관습 및 선례를 존중하기 때문에’(30.2%), ‘후손들이 성묘를 할 수 있기 때문에’(15.9%), ‘화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12.7%), ‘종교적 이유 때문에’(3.2%) 순이었습니다.매장을 하는 이유가 적극적인 욕구보다는 전통적인 관습이나 이미 준비되어서 사용한다는 소극적인 성격이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묘지의 경우 사용기한이 법적으로 정해져 더욱 그렇습니다. 이처럼 고인을 모시는 방식에 있어 사람들의 생각과 고인을 모시는 방식이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현실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림-묘지사용허가증, 본적과 주소/신청인/면장이 허가한다는 내용과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화장과 함께 대세로 떠오른 봉안당도 단지 유골함을 잘 보관하는 것만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IC칩이 내장된 회원 카드로 체크하면 화면에 유골함의 사진이 나오고 곧 이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추모객 바로 앞에 유골함이 도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스마트폰 안에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묘지를 조성할 것이라고도 하는데,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고인이 좋아하는 장소나 유골을 뿌린 곳을 등록해두면 이후 그곳을 찾아 프로그램을 작동했을 때 현장을 배경으로 고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홀로그램을 통해 고인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도 등장이 예상되는 새로운 형태입니다. [그림-묘지(墓誌).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 등을 기록하여 묻은 판석(板石)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그런데 많은 사람이 삶의 마지막 집인 죽음과 관련된 공간을 두려움과 회피의 장소로 생각합니다.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며 가능한 보이지 않고 보지 않아야 좋을 그런 곳으로 여깁니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사라진다’, ‘없어진다’, ‘소멸한다’고 말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죽어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공간에 대한 추억과 관계를 통한 삶의 기억으로 말이지요. 기억됨으로 어쩌면 살았을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며 오히려 영원히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다 끝나고 사라진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큰 오산이고 실수입니다.그래서 잘 죽는 것, 웰다잉(well-dying)이 의미가 있습니다. 잘 죽어야 이후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인상, 관계된 수많은 사람에게 녹아내린 내면의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죽음과 관련된 공간이 인생의 유한성을 깨닫고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생각하는 공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공감하며 위로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죽음의 장소가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삶의 의미와 죽음의 가치를 성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지요. 지금까지 삶의 마지막 의식주를 생각해보았습니다. 1900년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삶의 마지막 의식주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화장의 권장, 개인묘지의 금지와 공동묘지의 등장은 유교적 전통으로 이어오던 매장과 공동체적 장례의식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전쟁이라는 혼란한 사회적 상황이 이어지다, 1970년대부터 <가정의례준칙>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장제도와 장례식의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화장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매장을 억제하고 봉안당과 자연장을 유도하는 정책이 펼쳐집니다.2000년 이후 최근에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고령화가 이루어지고 연명의료가 가능해지면서 인위적인 생명연장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논의되지 않던 존엄사와 ‘좋은 죽음’에 대한 관심이 1997년 보라매 사건과 2009년 김 할머니 사건 그리고 2018년 4월 시행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의해 일상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집이 아닌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상조회사와 병원장례식장으로 대변되는 죽음과 죽어감의 여정은 알게 모르게 한국인의 일상이 되었고, 그러한 변화의 흐름이 한국사회의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을 새로운 시선을 보게 합니다. 회피하려던 죽음에 직면함으로 삶의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풀리고, 미리 죽음을 챙기는 중에 내가 누구인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중요한 인생의 질문에 해답을 찾게 합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로 인한 두려움의 정서를 관리하면, 죽음은 일상을 보다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는 힘을 줍니다. 이처럼 죽음은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