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의·식·주 이야기 ④]4차 산업혁명시대에 다시 쓰는 부고(訃告) ‘부고’(訃告) 또는 ‘부음’(訃音)은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이나 통보를 가리킵니다. 가족 중 누군가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서둘러 하게 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고인과 유가족의 지인에게 부고를 전하는 것입니다. 때로 누구에게까지 전해야 할지 그리고 혹시 잊고 전하지 못한 사람은 없는지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장례식장을 정하고 입관일과 발인일 그리고 장지(葬地) 등이 결정되면 이제 부고 전달에 필요한 내용이 갖춰집니다.요즘 부고에는 고인의 이름, 사망연월일, 자손의 이름, 발인일자, 장지의 위치 등을 명기합니다. 장례식장 입구와 개별 조문 공간 앞의 스크린에서 이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로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리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삶의 곳곳에 뿌리내리게 될 미래 시대에 부고는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4차 산업혁명은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을 통해 생명연장을 이룬 인간이 사물인터넷(IoT)으로 인공지능(AI) 로봇과 소통하며 편리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물리적 세계만이 아닌 가상현실(VR)을 경험하고 가상세계(Virtual World)에까지 삶의 영역을 넓혀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고인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부고는 어떻게 바뀔까요. (그림-사물인터넷(Iot), 다양한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묘사) 먼저 고인의 이름 옆에는 괄호 안에 또 하나의 이름을 적을 수도 있습니다.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나, ‘아바타’의 이름입니다. 사망연월일은 신체의 활동이 멈춘 생물학적 사망일이 아니라, 인공장기의 작동을 중단한 날을 기록할지도 모릅니다. 인공장기로 가능해진 생명연장으로 죽음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또 발인일자와 장소는 위성항법장치(GPS)상의 주소만 아니라, 장례예식을 중계할 인터넷 사이트 주소 또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가상세계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을 최종적으로 모실 장소인 장지를 적을 공간에는 지도상의 위치를 적거나, 아니면 빈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을 통해 현실감 있게 고인을 만날 수 있기에 따로 장지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니까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인공지능이 일상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며 시시각각 개인만 아니라 사회, 전 지구적인 삶을 변화시키는 상황에서 그려볼 수 있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죽음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예식과 추모와 같은 활동은 삶과 분리되지 않는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죽음에 이런 일상의 변화가 이미 반영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인공지능과 생명공학으로 포스트휴먼(posthuman)과 같은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게 된다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함께 죽음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묻게 되겠지요. 인간은 점차 기계화되어 로봇과 구별하기 어려운 사이버 인간이 될 것이고, 기계는 보다 인간에 가까워져 인간 고유의 특성까지도 닮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정보통신기술(ICT)) 그리고 고인이 살아온 삶에 대한 빅데이터(big data)가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으로 온라인에서 저장 및 활용되어 언제든지 어디에서라도 접할 수 있다면, 고인을 기억하기 위한 장례식과 추모의 의례 또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로 죽은 사람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불러와 상호교감하게 될 것이니까요.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의 삶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듯, 삶의 또 한 측면인 죽음에 있어서도 인공지능으로 변화될 미래에 대해 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림-인간) 인간은 삶의 시간만 아니라, 죽음의 경험을 통해서 정의되는 존재입니다. 한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은 살아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태도로 일상을 대하느냐로 자리 매겨집니다. 동시에 언젠가는 맞을 죽음을 준비하며 오늘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이후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평가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가져다 줄 인간강화를 통한 생명연장과 불멸이라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시도는 수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또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삶이 낳을 수많은 문제도 충분히 예상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음을 통제하여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품은 인간존재 본연의 모습을 인식하면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래의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이 죽음을 가지고 태어난 죽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야말로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