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은 15.7%이다. 15%가 넘으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라 하는데 OECD 회원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한국은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다. 웰다잉, 퇴직 이후 제2의 인생, 좋은 죽음을 위한 준비 등은 이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이런 긍정적인 주제는 그래도 괜찮다. 노인이라는 단어 뒤에 부정적인 단어를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노인우울, 노인차별, 노인파산, 노인학대, 노인자살 등 여러 노인문제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언론을 오르내린다. 누구도 예외 없이 맞게 될 인생의 후반기이지만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정작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그렇게 갑작스레 맞게 된 노년기는 쓸쓸하고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400년도 훨씬 전 미리 이러한 세상이 올 것을 알았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세월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인생의 법칙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경고하듯 오늘의 우리에게 말해주는 이가 있다. 바로 영국의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다. 내 딸들아, 말해보아라. 너희들 중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느냐?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재산을 줄 것이다. (1막 1장, 리어왕) 가진 걸 다 보여주지 말고, 아는 걸 다 말하지도 말고, 가진 걸 다 빌려주지도 말고 (1막 4장, 광대)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들은 모르는 척 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다 효자지. (2막 4장, 광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진지하고 심오하다는 리어왕. 여든이 넘은 노년의 왕은 세 딸을 불러 놓고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딸에게 제일 많은 재산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재산을 얻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로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두 언니와 달리 막내 코딜리어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자식의 도리에 따른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저 입으로 뱉는 말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겠다는 왕의 어리석음에 리어왕의 비극이 시작된다. 외양은 바보인 듯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광대는 리어의 주변을 맴돌며 허튼 말을 쏟아 낸다. 리어는 광대를 비웃지만 사실 광대의 말은 시공을 뛰어넘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될 줄 알았던 리어는 결국 믿었던 두 딸에게 배신당하고 폭풍우 치는 광야를 헤매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다 세상을 떠난다.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언제, 어떤 기준으로 분배해 주어야 할 것인가는 리어만의 고민이 아니다. 우리의 은퇴 준비는 미흡하고 처음 맞는 노년은 불안하기만 하다. 내 자식은 다를 거라 생각하고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는 쓸쓸한 노후를 맞게 되지는 않을까, 잘못된 상속으로 자녀들의 사이는 갈라지고 부모에게까지 서운한 마음에 등을 돌리면 어쩌나, 자식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유산은 죽기 직전에나 주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주관으로 전국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3년마다 전국 단위의 큰 설문조사가 실시된다. 노인복지법의 근거를 위해 다양한 주제로 질문하는 [노인실태조사]가 그것인데 가장 최근 조사인 작년 2020년 제5차 조사의 설문지 문항 중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귀하께서 재산 처리방식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모든 자녀에게 골고루 상속 2) 장남에게 더 많이 상속 3) 장남에게만 상속 4) 효도한 자녀에게 전부/ 더 많이 상속 5) 경제 사정이 나쁜 자녀에게 전부/ 더 많이 상속 6) 전체 또는 일부 사회에 환원 7) 나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가장 많은 재산을 준다고 했던 리어와 달리 현재의 응답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은 1번 ‘모든 자녀에게 골고루 상속한다’가 54.2%로 절반을 넘었다. 다음으로 높은 비율은 ‘나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는 응답이 17.4%나 되었으며, ‘장남에게 더 많이 상속한다’는 응답도 10%를 넘었다. 귀하께서는 본인의 생애 말기 죽음에 대하여 가족과 상속처리, 장례의향에 대해 논의하셨거나 하고 계십니까? 1) 예 2) 아니오 귀하께서는 본인의 생애 말기 죽음에 대비하여 유서작성을 준비하였거나 하고 계십니까? 1) 예 2) 아니오 가족과 상속처리와 장례의향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응답은 아니오가 88%를 넘었으며, 유서작성을 준비하였거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아니라는 응답이 94%가 넘게 나왔다. 생각만 할 뿐 논의하거나 실행에 옮긴 비율은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유언장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죽기 전 어떤 유언장을 남겼을까? 현재까지 남아있는 셰익스피어의 관련 자료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그의 유언장이다. 현재 런던의 국립문서보관서에 있는 이 유언장은 죽기 1달 전 수정되었으며 6명의 입회인이 함께한 가운데 변호사가 작성하고 셰익스피어가 마지막에 서명했다. 유언장은 셰익스피어의 가족 상황이나 가까운 친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준다. 큰 딸에게는 현금과 주택, 땅을 물려주었고, 누이와 조카에게도 재산을 남겼다. 고향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10파운드씩 나누어 주라고 명시했으며 연극을 함께했던 동료들에게도 유산을 남겼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정작 그의 아내 앤에게는 침대, 그것도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작은 딸에게는 은그릇만을 남겨주노라고 적었다. 무슨 기준으로 재산을 이렇게 분배한 것인지 짓궂게 보이는 이 유언에 대해 후대 여러 추측을 해보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재산처리 방식이나 유산상속, 유서작성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나 정확한 안내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속 분쟁에 관한 주변의 부정적인 이야기들과 자신으로 인해 가족 간의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준비가 늦어지게 된다.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미리 준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서로의 유익을 앞세우며 유산을 근거로 자녀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언장으로 가족 간 분쟁의 씨앗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아닌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유산으로 받은 권력과 엄청난 재산이 가족을 원수로 만들고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지혜, 신앙생활이야말로 물질적 풍족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남겨진 부모의 유산이 자녀들의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지 오히려 싸움과 불화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어왕]이 나오고 200년 뒤, 이 작품을 읽은 또 다른 대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에서 평화를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이다.” 법제처의 찾기쉬운 생활법령 유언 관련 정보보기 https://easylaw.go.kr/CSP/CnpClsMain.laf?csmSeq=234&ccfNo=1&cciNo=1&cnpCls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