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3막1장, 햄릿)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깊은 고뇌에서 나오는 독백으로 더 많이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11살 어린 나이로 죽은 셰익스피어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햄넷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아들이 죽고 몇 년 뒤 아버지의 죽음도 겪게 되는데 사랑했던 두 사람의 죽음이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로 4대 비극이라 불리는 <햄릿>,<맥베스>,<리어왕>,<오셀로> 모두 이 시기에 쓰였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선왕이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곧바로 이어진 엄마 거트루트 왕비와 숙부인 클로디어스의 재혼으로 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 아버지의 유령으로부터 숙부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가혹한 이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지 맞서 싸울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우리는 갈등의 순간 햄릿의 독백을 쉽게 인용한다. 그런데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를 결단해야 하는 문제의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며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나라로 가게된다. (1막 2장, 햄릿)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시간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었음에도 여전히 가족들 사이에서도 함부로 입에 올리기 조심스러운 터부시 되는 주제임이 틀림없다. 아직 건강하신 부모님께 혹시 생각하고 계신 장례의 방식이 있으신지,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묻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이전에 생각지 못한 인생 후반기의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시도와 접근이 나타났고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지에 이어 드디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하는 법률이다. 원명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며 병의 호전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성을 유지하며 죽음을 맞겠다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연명의료결정법의 또 다른 이름은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법이 시행된 지 3년 6개월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으며 환자 17만 명 이상 실제 연명의료 중단까지 이행되었다고 발표했다. 의료기관들 역시 전국 단위에서 모든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심으로 306개소가 연명의료결정제도에 참여하고 있다.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의 경우 ‘추정 및 대리에 의한 의사표시 인정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소극적인 안락사라 볼 수도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로 반대 의견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자기 자신의 죽음에 관해 타인이 아닌 본인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같이 높은 참여율을 보인 것이라 생각된다. 아, 이 더러운 죄악,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형제를 죽인 죄, 나는 기도조차 할 수 없다.....아, 비참한 이 심정, 죽음같이 어두운 내 마음. 덫에 걸린 내 영혼! 하늘의 천사들이여 도와주옵소서. 이 딱딱한 무릎을 굽혀보자. 강철 같은 마음, 갓난아기처럼 부드러워져다오. 기도하오니, 모든 일이 다 잘 되게 해주시옵소서. (3막 3장, 클로디어스) 지금 쉽게 죽일 수 있지만, 그가 기도를 하고 있다. 회개하지 못하고 그 모든 죄를 안고 하늘에 간 내 아버지와 달리 천국을 가기에 가장 완벽한 상태로 죄를 고백하는 그 순간에 내가 그를 죽인다면 복수가 될까? (3막 3장, 햄릿) 좋은 죽음이란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숙부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숙부의 기도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는 살해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모든 죄를 안고 연옥을 떠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회개하는 그 순간에 죽게 된다면 아버지의 죽음과 달리 ‘천국을 가기에 가장 완벽한 상태’에서 죽게 되기 때문에 복수를 미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회가 중심이던 중세 유럽에서 좋은 죽음이란 임종 직전에 성직자를 불러 지난 죄를 회개하고 신의 은총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반면 회개할 틈도 없이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죽음 ‘모르스 레펜디나(Mors Repentina)'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 우리는 좋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좋은 죽음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90.6%(이하 복수응답)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이어 '신체적·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90.5%),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89.0%),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이하는 것'(86.9%)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고통과 고립 속에서 ‘당하는 죽음’이 아닌 품위 있고 존엄하게 ‘맞이하는 죽음’으로 끝내고 싶다는 마음인 것이다. 우리들은 현재의 우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앞날은 알지 못한다. (4막 5장, 햄릿) 우리는 한 해에도 몇 번씩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게 된다. 각기 저마다의 인생을 살았듯 마지막 죽음의 모습도 모두 다르다. 현재의 우리를 알뿐 우리의 앞날은 알지 못한다는 햄릿의 대사처럼 알 수 없기에 더 두렵고 막막한 것이 나의 죽음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좋은 죽음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분명코 오게 될 나의 죽음을 그려보자. 사랑하는 가족과 가까운 이들은 내가 준비한 대로 나의 마지막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연명의료요향서 소개 및 작성 가능 기관 찾기https://www.ls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