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 숲이라는 목가적인 전원을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 [As You Like It]은 우리말로 [뜻대로 하세요], 혹은 [당신 좋으실 대로]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앞서 언급한 [리어왕]이나 [햄릿]보다는 덜 알려지고 공연된 작품이지만 재치 있는 대사와 남장여자로 인해 일어나는 해프닝, 권력 다툼으로 시작되어 화해와 용서, 결혼으로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오늘날 정신분석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발달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는 생애주기 발달이론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에릭 H. 에릭슨(1902-1994)이 바로 [뜻대로 하세요]의 2막 7장에 나오는 제이퀴즈의 대사를 기본으로 발달단계 모델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남녀는 배우입니다. 각자 퇴장도 하고, 등장도 하며 주어진 시간에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는 7막의 연극이죠. 첫 번째는 갓난아기 역할입니다. 유모의 팔에 안겨 울고 젖을 토합니다. 두 번째는 학교 가는 아이 역할, 아침에 세수해서 반짝이는 얼굴로 가방을 메고 달팽이처럼 꼬물거리며 학교로 기어들어가죠. 세 번째는 연인 역할입니다. 용광로처럼 한숨지으며 연인의 눈썹을 찬미하는 슬픈 시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군인 역할입니다. 이상한 확신에 차서 표범 같은 수염을 기르고 체면만을 걱정하며 걸핏하면 후닥닥 싸움이나 하고 대포 속에도 뛰어들죠. 이어 다섯 번째는 재판관 역할입니다. 엄격한 눈초리와 점잖은 턱수염으로 얼굴엔 주름이 깊고 배는 불룩하고 현명한 말들과 진부한 표현들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여섯 번째, 앙상해진 다리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광대 역할입니다. 콧등에 안경을 걸치고 허리엔 돈 주머니를 차고 사내다웠던 목소리는 가느다란 삑삑거리는 소리로 바뀌어 이제 휘파람처럼 들립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다시 어린아이 역할입니다. 이도 없고, 눈도 보이지 않고, 미각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을 연기합니다.” (2막7장, 제이퀴즈) 셰익스피어가 제이퀴즈의 대사를 통해 말하고 있는 인생의 7단계 인생이란 무대에 올려지는 한 편의 연극, 우리 모두는 장면마다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제이퀴즈의 대사는 인간을 자조적으로 바라보는 듯 느껴지지만 좀 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통찰하는 듯 보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막에 머무를 수 없다.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연기해야 하는 건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에릭슨이 1950년대 처음 발달이론을 주장할 당시에는 셰익스피어가 나눈 6단계와 7단계 사이에 하나의 단계를 더 추가해서 총 8단계로 인간의 생애를 구분했다. 그러나 이후 40년의 시간이 지나고 에릭슨 자신의 나이도 90에 가까워지게 되자 인생의 단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초고령사회로 나아가며 연장되는 평균수명, 노인의 사회참여 필요성 등을 고려해 하나의 단계가 더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에릭슨의 생애주기 9단계 발달이론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에릭슨의 생애주기에 따른 9단계 발달이론 노인의 정의 9개의 발달단계에 따라 해당하는 나이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연령의 경계는 갈수록 뒤섞이고 있으며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나이를 규정한다. 앞으로는 연령이 아닌 새로운 기준으로 생애주기의 단계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많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어느 단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는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청년기와 성인기를 맞게 되는 것과 달리 노년기를 맞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내가 '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른 단계들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나라는65세 부터를 노인법지법에 의해 노인으로 정하고 있다. 기초연금, 국민연금, 장기요양보험 등의 주요 복지제도도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게 되는 것도 65세를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 기준은 1956년 UN이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지칭한 뒤 많은 국가들의 노령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크게 연장된 90년대 이후에는 65세부터 100세가 넘는 고령까지 동일한 집단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노년학자들은 지적한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도 초기노인, 중기노인, 후기노인으로 구분하고 각각 맞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신체와 기대수명 등 여러기준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노인의 연령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논의는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100세의 철학자 김형석 박사는 배우고 성장하는 한 노인이 아니며, 90이 넘도록 성장하고 인생을 지켜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이야기한다. 김형석 박사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선진국일수록 젊다고 생각하는 나이 든 사람이 많고, 후진국일수록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회의 기준보다 이렇듯 스스로 느끼는 나이인 주관적 연령과 스스로 느끼는 주관적 건강 상태가 본인을 노인이라 규정짓게 만드는 것이다. 탄생과 죽음, 성장과 노화라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으나 한 번 뿐인 내 인생이라는 무대, 그 위에서 몇 막 몇 장의 어떤 역할을 연기할 것인지는 정해진 대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고령화 시대, 피하고 싶은 치매 치매는 인간 역사와 함께 오래도록 함께 해왔다. 고대 이집트인부터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히포크라테스가 문헌을 통해 치매를 설명하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인은 책임지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 그 이유는 노화에 따른 정신적인 퇴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플라톤도 노년기가 되면 정신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 치매의 주원인은 나이 듦 그 자체라고 언급했다. 1797년 프랑스의 의사 '필립 피넬'에 의해 치매(디멘시아, Dementia)가 공식적인 의학용어로 사용되기 200년 전, 셰익스피어도 제이퀴즈의 대사를 통해 인생의 가장 마지막 단계를 치매를 연상시키듯 이렇게 묘사한다. "다시 어린아이처럼 이도 없고, 눈도 보이지 않고, 미각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 [리어왕]에서도 리어가 팔십이 되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져 딸들에게 엉뚱하고 불합리한 기준으로 재산을 분배하는 실수를 하게 되는데 작품 속 그의 대사와 지문을 통해 인지기능이 악화되고 감정 기복이 심한 비이상적인 모습, 편집증과 환시, 가까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 등 치매의 여러 증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죽음이란 맞이하기 전에 결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치매는 주변에서 당사자와 가족, 간병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겪으며 어렵기만 한 그 실체를 알게 되었으니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계속 진행되는 병으로 완치란 없고 여러 약이 개발 중이란 뉴스를 접하지만 아직 완전한 치료약도 없으니 셰익스피어의 표현대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이 병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86만 명, 노인 인구의 7.1%(보건복지부, 2020년)가 앓고 있는 질환인 치매는 이제 일부의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 우리 가족,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치매 유병율 : 65세 이상 노인인구 100명당 치매환자수 4년 전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한 우리 정부는 치매의 예방과 치료 돌봄을 위한 인프라를 확충해가고 있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보건복지부-중앙치매센터-광역치매센터-치매안심센터로 내려오는 관리체계를 구축하였고, 전국 256개 시군구에 운영 중인 우리가 지역사회 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종합검진을 받는 것처럼 매년 치매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다. 조기검진과 조기 치료를 통한 관리, 치매인식개선 캠페인, 치매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치매의 종류와 돌봄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치매의 당사자인 환자와 가족, 돌봄 종사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제도와 서비스에 대한 내실화가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치매를 이해하는 것 역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죠."(5막1장, 터치스톤) [뜻대로 하세요]의 배경이 되는 아덴 숲은 아름다운 전원으로 묘사되지만 그 속에는 혹독한 추위가 있고, 맹수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아덴 숲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사랑을 찾게 되고 더 나아가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아덴은 우리가 속한 각자의 삶의 터전과 다를 바가 없다. 광대 터치스톤은 유쾌하게 극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데 마지막 5막에서 시골 청년 윌리엄이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죠."라고 말한다.결국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때로는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학자처럼 다 아는 척, 군인처럼 용감한 척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는 것도, 치매에 걸리는 것도, 다가오는 죽음도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 이것을 깨닫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바로 현명한 자의 인생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이라는 무대(Stage),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주어진 막(Act)과 장(Scene)마다 마음껏 후회 없이 도전하고, 사랑하며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주인공 로잘린느의 대사가 바로 이 희곡의 제목이 된 게 아닐까. As You Like It! 당신 뜻대로 하세요! 치매에 관한 정보 및 교육을 위한 중앙치매센터 바로가기 https://www.nid.or.kr/main/main.asp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