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복음 2]은혜의 왕 노릇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로마서 5:20-21 -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입니다. 그 복음은 은혜로 죄인인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행동입니다. 기독교와 교회는 오직 복음을 선포하고 그 은혜를 증거 할 때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로 거듭나게 됩니다. 은혜의 두 가지 측면하나님의 은혜는 ‘값비싼 은혜’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값비싼 은혜가 복음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난 값비싼 은혜입니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는 은혜’입니다. 그 값비싼 것을 하나님과 원수 된 자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우리는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으나 값없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비싼 은혜’이자, ‘값없는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만일 값싼 은혜에 끌리면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 계속 부와 건강과 성공과 번영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내게 주어지면 은혜를 받고 복을 누리는 것으로, 그런 것들이 없으면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결국 십자가의 도를 알고자 힘쓰지도 않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은혜 타령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거듭남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림-필립 상파뉴(Philippe de Champaigne),<시몬 집에서의 만찬>(Le Repas chez Simon), 1656년) 또한 값싼 은혜에 끌리면 회개 없는 용서에 익숙해집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죄를 인식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죄 사함을 좋아하고 자신이 죄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잘못된 복음이요, 잘못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값비싼 은혜를 망령되이 일컫지 말고 망각하거나 왜곡시키지도 말며 소홀히 여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고, 이 땅에서 영생의 삶을 누릴 수도 없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과 비극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고통과 절망, 두려움과 낙심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 고린도후서 6:1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은혜가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선행이나 희생,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은혜와 의의 권세 아래 있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율법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가 드러나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미천하고 죄의 종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스스로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은 율법을 깨닫고 보니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우상을 섬겨도 죄인 줄 몰랐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그게 그렇게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총만을 구하게 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로마서 5:20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것은 모든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신약의 인물들뿐 아니라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도 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의 앞에 서보니 내가 형편없는 죄인임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림-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회개하는 베드로>(Saint Peter Repentant Edit this at Wikidata), 1645년) 그리스도인의 승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더한 곳에서 항상 죄와 타협하며 죄 중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하나님과 화목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건이며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그 의안에서 자신은 말뿐인 위선자요 의롭지 못한 존재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성경 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오직 은혜로 살게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17 - 은혜의 왕 노릇 우리는 죄와 은혜의 왕 노릇 안에 있습니다. “왕 노릇”이란 실제적인 힘과 영향력을 말합니다. 죄의 왕 노릇 안에 있다는 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죄가 왕 노릇함으로 죄의 권세 아래 있을 때는 죄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부정하고 믿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불순종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것은 죄가 왕 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것, 안정과 성공, 물질과 번영에 집착해 살아갑니다.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를 추상적으로 여기고 기복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와 건강이 내게 있어야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과 생각 자체는 죄의 권세 아래 있고 죄가 왕 노릇해서 그런 것입니다. 더욱이 죄의식이 점점 사라집니다. 그것을 가리켜 인간타락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 많은 지식과 놀라운 도덕적 성품을 가진 사람도 이 사실을 모릅니다. 죄의 왕 노릇에 대한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림-조셉 브레다엘(Joseph van Bredael), <무리에게 설교하시는 그리스도>(Christ preaching to the Multitude), 1706-1739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고린도전서 15:10 - 그런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왕 노릇이 나타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창조주시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은혜가 내 안에서 왕 노릇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불편하고 내 안에서 죄와 은혜가 싸웁니다.은혜가 왕 노릇할 때는 모든 죄와 허물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삶, 영생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기뻐하며 천국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삽니다. 내 안의 은혜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께 삶을 의탁하게 됩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회개와 믿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은혜를 붙듭니다. 그 은혜가 있어야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그 은혜의 증인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내가 은혜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은혜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데,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내게 왕 노릇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험악한 세상에서 은혜의 빛을 따라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거듭난 천국 백성의 표지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은혜의 본질이시기 때문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을 살며 승리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너무나 커서 그 자비를 감소시키는 것보다는 바다의 물을 말리거나, 해의 빛을 빼앗거나, 우주를 좁게 만드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 찰스 스펄전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1. 은혜의 선물이 얼마나 귀한지 인식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나의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이야기해봅시다.2. 율법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율법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봅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앙의 미천한 죄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그 은혜의 신비를 따라 그 은혜가 내 안에 왕 노릇함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령이시여,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은 우리 모두를 향하여 오직 주의 은혜의 빛을 비춰주시고, 그 은혜를 따라가는 은혜 중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